내포문화숲길..백제부흥군길 3코스 중 대련사 - 임존성 구간을 걷기로 한다..

광시- 최익현묘를 거쳐 오는 도로구간은 다 생략한다..

 

대련사에 우뚝한 600년 거목 2그루와 인사를 나눈다..

거반 20년만의 재회같다..

 

의자왕때 건립되엇다는데...

임존성...백제의 마지막 순간 ..부흥운동의 중심이었다..

 

절 옆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간만에 내린 8월 장마비로 개울물이 요란하다..

600미터 올라가면 성벽이 나온다..

정자에 올라보니 멀리 오서산에 구름이 머흐레라..

 

임존성..

백제 부흥의 기치를 들고 3년간 저항의 중심에 섰다..

 

성벽둘레 2.5km로 6개의 산봉우리를 이어서 테뫼식으로 축성했다..

 

임존성의 두사람..흑치상지와 지수신..

그들이 달리 걸어간 두길..

임존성의 남문지 성벽처럼 구불지고 명암이 갈린다..

 

흑치상지..

성이 흑치.. 흑치국 담로 귀족출신이라고 한다..

흑치국 담로는 어디인가?

1)설 지금 필리핀쯤에 있었다는 설 - 흑치를 이를 검게 물들이는 풍속을 가진 것으로 해석

2설) 충남 덕산지역으로 보는 설 "  흑치는 "검은 내"라는 우리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본다. 덕산이 금물(今勿)현을 불리는데,  검은 물이라는 의미이고 이것의 또다른 표기가 흑치라는 것이다.

 

낙양성 북망산에서 발견된 흑지상지 묘지명에 백제 서부 출신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예산군 덕산 지역이라는 설이 맞을 것 같다..그래서 같은 지역 임존성의 중요성도 잘 알지 않았을까?

그는 의자왕 항복무렵 당에 항복했으나, 의자왕이 소정방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탈출하여 임존성에 웅거 부흥의 불꽃을 올린다.

그에 호응하여 한떼 3만의 군사가 집결하고, 200성을 회복했다.

하지만, 내분으로 부흥군이 붕괴되고, 백강구전투에서 백왜 연합군이 패배하자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다..

그는 다시 당에 투항하여 스스로 선봉이 되어 지수신이 지키는 임존성을 함락시킨다..

그뒤 당의 앞잡이가 되어 웅진도독부을 지키다가 신라의 공격을 받아 웅진도독부가 철수할 때 당으로 입국한다..

그리고 당나라 장군이 되어 토번, 돌궐 등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염국공의 작위를 받았으나, 결국 숙청되어 감옥에서 목을 매고 자결한다..

 

지수신..

그는 흑지상지가 배신을 하고 당에 투항하여 선봉장이 되어 임존성을 공격할 때 최후의 부흥군을 이끌고 싸우다가 탈출하여 고구려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알려지지 않는다..

 

적자생존...글을 써놓아야 살아남는다..

흑치상지의 기록은 당나라에 많다..더구나 그의 묘지명까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는 역사책에 많이 언급된다..

하지만, 지수신의 기록은 거의 없다.

그래서 무명의 독립운동가처럼 기억해주는 사람이 드물다.. 

 

임존성 북서치에서 외쳐본다..

지수신!! 

고생했소..수고했소..

 

성 북쪽을 돌아 나오면 대흥저수지가 보인다..

무한천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장마비에 흙탕물이 가득하다..

 

오늘 임존성 둘레를 돌며 역사의 기로에 섰던 2사람을 생각한다..

흑지상지와 지수신,

아니 쉽게 신숙주와 성삼문으로 대치해 본다..

기로에서 당신을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차라리 돌아갈까??

굳이 그런 길이 있다면, 왜로 도망가는 길이었을까??

 

저수지를 바라보면 걷는 성벽길이 정갈하다..

도중에 남문지로 내려가면 대련사로 내려가는 갈림길로 이어진다..

 

<오늘 걷기> 대련사 - 임존성 정자- 남문지 - 북서치 - 북동치 - 정자 - 대련사 약 4.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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