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운산면에 해바라기가 많이 폈다고 해서 간다..

내비에 운산교회를 치고 간다..

 

해바라기 개화기가 8월-9월이라고 들었는데, 여기는 벌써 시들어간다..

너무 조생종인가??

 

대부분 갈기가 시들었는데, 몇몇은 햇빛 갈기를 자랑하며 선플라워임을 과시한다..

잘 나가는 애들에게 달라붙어 꿀빠는 녀석들은 여전하다..

어디 곤충세계뿐이랴..

 

한물간 꽃밭에서 몸을 낮추고 뭔가를 찍는 프로정신..

뭔가 보니..키 작은 어린 해바라기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 모양이다..

 

왕년의 영화 해바라기의 ost가 생각나고... ( https://youtu.be/P4Kgc3wgQms  )

스페인 세비야 가는길에 만났던 해바라기 밭이 생각난다..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를 닮고 (김광섭)

태양신을 섬기는 인디언 추장의 머리 같고 (최승호)

귀를 너무 세우다 머리까지 너무 무거워 고개를 떨구었구나 (이해인)

 

일찍 피면 일찍 시들고 

늦게 피면 늦게 시드는 것은 만물의 섭리..

그늘에 피어도 시들고

해를 따라당겨도 시들고 

잘 나가던 젊은 정치인이 시들고

잘 나가던 늙은 코메디언이 시들고 

영고성쇠, 성주괴공, 생로병사, 영허소장

그게 다 만물의 본 모습이로다..

(수암)

 

한물간 해바라기 밭에서 공연한 넋두리만 날린다..

그러니, 꽃 좋은 때 아니 반쯤 피었을 때 와서 보라고 하느니라..

好花看到半開時  (호화간도반개시)..

 

공주 미르섬에 코끼리마늘 꽃이 유명하다고 한다..

공주에 미르섬이 어디지??

네비에 치고 가보니, 공산성 밖 금강 건너편 하중도 이름이 미르섬이다.

금강 고수부지에 캠핑족도 많다..

 

공산성을 산책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강변에 보랏빛 코끼리마늘밭이 조성되어 잇다..

사진 찍으러 많은 사람이 모였다..

 

공산성과 코끼리마늘꽃의 마리아주..

꽤 그럴듯하다..

공산성을 질투하는 벌, 나비도 엄청 마늘꽃에 구애를 한다..

 

푸른 패랭이도 한 몫을 차지햇다..

 

개양귀비, 기생초, 패랭이가 적황청의 멋진 앙상불을 이루고..

 

허허..이넘아! 쎄빠지겠다..ㅎㅎ

 

너는 죽어 꽃이 되고, 지는 죽어 벌나비 되겠다

맹서라도 하였느냐??

 

공산성을 포위한 당나라 군대처럼 코끼리마늘꽃이 위세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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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을 받고 세종시 이응다리 구경을 간다..

세종우체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간다..

 

세종시답게 원형도보다리를 한글자모 o다리라고 부른다.

1446년에 한글을 반포했다고 다리 길이를 1446m로 맞추엇단다.

건축비가 1083억원..헉..

요즘 전국에 출렁다리, 케이불카 등을 군마다 건설하느라 난리다.

세종시의 이응다리도 이런 유행의 일종으로 보이고, 과도한 비용지출로 보인다.

더구나, 문통 치하에서는 세종보를 철거할려는 획책했는데, 그러면 금강에 물이 없을텐데, 무슨 도보다리가 필요할까 싶은데, 거액을 들여 건설을  계획을 햇다는 자체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었으니 그럴 걱정은 없어졌다..

 

사실, 비생산적인 건설에 돈 들이지 말고, 이런 예산 아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국에 

육아수당으로 아기 한명당 월 30만원씩 주는 것이 낫을 것 같다..

40년전 프랑스 출산율은 현재 우리나라(1.05명)와 비슷하게 전세계에서 제일 출산율이 낮았다.

15년전에 프랑스 관광 갔을 때 가이드한 유학생이 말하기를

육아수당을 많이 주어 아이 3명만 키우면 좀 아껴서 여행도 다닐 수 잇을 정도라고 했다

뉴스를 보니 프랑스의 출산율이 2017년 여성 1인당 1.92명으로 유럽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4대강 사업으로 금강 준설작업과 세종보가 없었다면,  장마철 6월-7월 이외에는 이런 강물은 없엇을 것이다.

그저 백사장만 가득할 터인데, 도보다리가 무슨 운치가 잇었겠는가??

 

세종보 덕에 푸른 금강과 전월산을 바라보니 기분은 좋다.

 

멀리 세종 수목원이 보인다..

돈줄을 쥐고있는 경제부처가 있어  재원을 충분히 지원받는 곳이라 무슨 시설이든 잘 짓는다..

 

전망대에 올라 금강 하류를 바라본다..

 

이응다리는 요즘처럼 더울 때는 야간구경이 좋단다.

 

꽃댕강나무가 부족한 수목 속에서 분투한다..

 

이응다리 1층은 자전거 전용이다..

4대강 자전거 도로를 엄청 비난하더니, 문통정권도 비싼 자전거 전용다리를 만들었다..

내로남불, 조로남불..은 끝날 줄 모르고, 부끄럼도 모른다..

 

세종시의 상징새는 파랑새란다..

연기군 시절에는 제비였는데..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하긴, 요즘 강남갔다 오는 제비가 없더라..

그냥 강남 8학군에 눌러 살지..

 

이응다리 구경을 마치고, 냉면 먹으러 공주로 간다..

공산성 인근에 주차를 하고 걸어간다..

 

무령왕이 공산성의 상징이 되었다..

 

냉면집 매향은 줄을 서서 20분이상 기다려야 자리가 난다..

기다려서 먹을 만하다..

평양식 메밀냉면이 정갈하고 얼음덩이 육수를 사용하지 않아 좋앗고, 동치미 맛도 좋다.

 

식당에 걸린 글씨

花落庭前憐不掃  (화락정전련불소) 꽃이 뜨락에 떨어지니 사랑스러워 쓸지 못하고
月明窓外愛無眠 (월명창외애무면)  달이 창밖에 밝으니 사랑스러워 잠 못이루네.

식사후 차마시러 금강변 청벽산이 보이는 풍류다방으로 간다..

 

얼그레이 홍차와 흑임자 스노우볼을 즐기며 언제 청벽산을 올라 가보마 다짐한다..

 

풍류다방의 풍류담당은 황진이였다..ㅎ

눈과 입이 즐거운 하루였다.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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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고암 이응노 미술관은 몇번 기웃거렸지만, 사실 고암 이응노 생가는 어디 있는지 몰랐다.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걷기 출발점이라는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그의 인생을 천착해본다..

 

백월산이 가까이, 용봉산이 멀리 보이는 한가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널찍한 면적으로 공원처럼 관리하니 생가공원 중에 상급이다..

 

복원된 생가는 초가 삼간..

그는 1904년 용띠해에 홍성에서 서당 훈장의 아들로 태어낫다. 나라는 일본에게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한자와 서예를 배웠다. 7살무렵 의병활동을 하던 숙부가 자결했단다.

 

버드나무 휘휘 늘어진 연못 건너편으로 생가를 바라보니 참 여유롭다.

 

그는 소학교(초등학교) 시절에도 그림에 소질이 잇었다.

 

 

<해강 김규진의 대나무 그림>

16세 집안에서 시키는 대로 조혼을 했다.

19세에 서울로 상경해서 왕실 화가로 유명한 당대의 고수 해강 김규진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를 배운다.

(15번이나 툇자를 맞은 끝에 입문했다는 설이 있다)

해강에게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는다.

20세인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으로 입선한다. 

 

그는 22세-23세 때 서울, 전주 등지에서 간판점을 운영했다.

28세(1931년) 때 조선전람회에서 청죽으로 특선을 차지한다.

 

1933년 스승 해강이 죽자, 스승의 화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화풍을 꿈꾼다.

 그리고 규영 정병조로부터 고암이라는 호를 받았다. 

32세(1935년)에 조혼한 부인이 죽자, 그는 전주 출신 박귀희와 결혼한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일본화의 대가 마츠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의 덴코화숙(天香畵塾)에 입문하여 서양미술의 소묘와 유화기법을 연수했다. (이때도 1년이나 문전박대를 당하다가 영친왕의 스승 해강 김규진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서야 문하생으로 받아 주었다는 설이 있다)

그해 일본미술협회전에서도 풍죽으로 입선한다.

이후 일본과 조선 양쪽 화단에서 수상을 한다.

 

소화12년(1938년)에 그린 동대문..

 

1930년대의 그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그의 인생에 중요한 여인은 박귀희와 박인경이다..

 

이응노는 일본의 패전을 직감한 1945년(42세)에 일본에서 가족과 함께 귀국한다. 

그리고 고향 근처인 예산 수덕사 아래 집을 사서 수덕여관을 개설하여 부인 박귀희에게 운영하게 하고 자신은 그림에 몰두 한다.

그무렵 수덕여관에 머물었던 여류화가 나혜석을 만나 프랑스 시절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보인다.

47년(44세)에 이화여대 제자 박인경을 만나기 시작한다..

50년(47세)에 6.25가 터지고, 아들(이문세)가 납북된다.

그는 고향인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 

58년(55세)에 21살이나 어린 박인경과 사랑에 빠져 함께 프랑스로 떠난다. 

(또 당시 국전에서 해강 김규진 계열이 소외당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에서 나름 활발히 활동하던 중 1967년(64세)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수감된다.

그전에 6.25때 납북된 아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북한공작원의 유혹넘어가 동베를린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었다.

 

 

그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전처인 박귀희가 옥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1969년 특사로 출옥한다.

 추사가 제주 유배생활 속에서 추사체를 완성시킨 것 처럼 

고암에게도 감옥생활은 그 예술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 부채, 밥풀, 간장 등 모든 재료를 이용해  그림, 조각, 판화 등 옥중작 300점을 만들었다.

 

출옥후에는 전처 박귀희가 있는 수덕여관에서 몸을 추스리며 마당바위에 문자추상 암각화를 제작하였다.

"삼라만상의 영고성쇠 모습"을 쓰거나 혹은 그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예술세계의 출발을 알리는 예고편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는 현처 박인경이 있는 파리로 다시 떠났다.

(박귀희는 2001년 수덕여관에서 사망하고, 수덕여관은 수덕사에 팔렸다)

 

 

1970년(67세) 부터 문자추상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1904년생 용띠해에 태어남을 용(龍)이라는 문자추상으로 그렸다.

 

그리고 동물그림, 수묵추상, 판화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제작한다

 

그러다가 1977년(74세)..그의 3번째 부인인 박인경이 백건우, 윤정희 부부의 자그레브 납치 미수사건에 관여하면서 한국과 관계가 단절된다.

백건우, 윤정희 부부를 취리히를 거쳐 당시 유고 자그레브까지 데리고 간 사람이 박인경이엇던 것이다.

 (http://www.allinkorea.net/27857 )

 

1983년 그는 박인경과 함께 프랑스에 귀화했다.

 

1980년 광주항쟁이후 역작 군상을 발표한다..

 

그는 1987년(84세)에는 평양에서 전시회를 열었고(그때 방북하여 아들을 만났다는 설이있다, 아들 이문세는 사리원중학교 교감으로 정년한후 77세로 죽었다고 한다)

1989년(86세)에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귀국을 시도했으나 당국으로부터 거부되었는데, 전시회 첫날 프랑스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파리에 묻혔다.

2007년 부인 박인경이 고암의 미술품을 대전시 기증하면서 시립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한다.

2011년 홍성생가와 기념관이 만들어진다.

 

그의 삶을 생각해본다.

망국의 시대에 태어나, 숙부는 항일 의병으로 자결했지만, 그는 일본에 건너가 일본인 스승에게 서양화 소묘와  유화 기법을 배운다.

그리고 파리로 진출하여 세계와 겨룬다.

감옥생활의 역경에서 진일보한 미적 세계는 한국적 정서가 배어든 문자추상이나 군상 등 작품을 통해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했다.

그의 인생은 이념적으로는 좌우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였지만 예술적으로는 끊임없는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었다.

 

이응노 기념관 전시실 다른 곳에는 5회 고암미술상 수상작가인 이진경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의 성장스토리는 다른 후진들에게 손가락이 아닌 달빛으로 전수되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고암연보(대전 시립 이응노미술관)  :  https://www.leeungnomuseum.or.kr/Menu.do?menuId=0101

가족대담(조선일보) :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801100053

누가 쓴 글에 세종시 3대 벚꽃을

1) 조천 제방길, 2) 고복저수지 둘레길, 3) 금남 금락정 주변 금강벚꽃길을 꼽더라..

안 그래도 전에 꾀꼬리봉 등산하면서 벚꽃피는 날 오마 꽃기약을 했었는데..

때가 딱 맞아떨어진 날이다..

내비에는 <부용산>, 안되면 <세종시 금남면 부용리 42>를 쳐라..

 

벚꽃길은 짧지만 굵다..ㅎ

 

벚꽃이 흐트러지게 만개하여 조금만 바람이 건들면 그대로 눈처럼 날린다.

벚꽃엔딩의 노래가 딱 어울리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이름처럼 금락(錦樂)..금강이 즐거운 날이다..

벚꽃 십리길..

꾀꼬리봉에서 부용산까지 강변이 벚꽃세상이다..

 

아기와 벚꽃 중에 누가 더 순백인가?

春光無處不開花(춘광무처불개화)

봄빛이 좋은 날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입김이라도 스치면 비가 되어 날린다.

앵화우(櫻花雨)..벚꽃비가 내린다..

 

차를 돌려 꾀꼬리봉 아래로 간다..

내비에 <부용주차장>을 친다.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금강이 먹여살리는 생명이 많다.

낚시꾼은 그 생명을 훔쳐가고, 백로는 배급을 받는다..ㅎ

 

길은 좁고, 벚꽃도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저 궁금증을 해소하는 정도..

 

금락정 주변이 제일 멋지다..

이리 보아도 멋지고, 저리보아도 멋지다..

 

대청댐- 신탄진- 매포- 부강을 지난 금강은 조금더 가면 미호천과 만나고 세종시를 지난다..

 

좋은 기운이 좋은 인연을 부른다.

문득 부강에 은거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내비가 절묘한 길로 안내를 한다..

 

거기서 만나는 금락정은 벚꽃에 둘러싸인 극락세상처럼 보인다..

 

달빛아래서는 달나라 누각이라해도 믿겠다.

 

인덕헌 주인을 만나 차담을 나눈다..

시집도 두권 선물 받고..

시를 쓰면서 행복한 은퇴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벚꽃처럼 멋지다..

 

이 봄날 

진달래 피는 언덕 오동나무 아래에서

벚꽃 편지에 내마음 그리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흰여우 꼬리를 흔들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때는 흰눈이지만, 지금은 벚꽃인가 보오..

 

벚꽃이 만개한 더운 날..25도나 열기가 치솟는 날 갈증을 달래려고 들어간 막국수집..

거기서 벚꽃 덕담을 만났다..

공회형제 동기연지 (孔懷兄弟 同氣連枝)

형제가 서로 깊이 생각해주는 것은 물려받은 기운이 같고 한 가지처럼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이 벚꽃을 내민다..앵화시중(櫻花示衆)

웃기만 하거나  인증샷을 찍는 것은 답이 아니다..

같은 기운으로 가지마다 이어져 하얗게 피는 벚꽃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유는

만물이 형제와 같음을 깊이 생각하라는 이유인가??

정읍사 오솔길을 걷고나서 동학운동기념관을 가려고 내비를 쳤더니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뜬다.

거기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갔다.

그런데, 그 외관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규모와 외관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황토현 전적지 인근에 대규모로 기념관부지를 확보하고 새로 지었다..

 

기념관 앞 큰터에 흰 기둥이 줄지어 서있다.

흰 기둥이 죽창을 상징하나 했는데, 해설사 말로는 당시 봉기한 90개 지역을 상징하는 기둥이란다.

기둥 광장 건너편 솔밭과 기와건물 부근이 황토현이다..

 

동학..

서세동점의 시대, 서학(전주교)의 포교, 서양과 일본의 세력이 몰려오는데, 나라와 백성은  양반 세력의 갑질에 거덜 나고 있었다.

그때 수운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한다. 동학의 포교는 착취가 가장 심했던 전라도에 많은 포교소를 만든다. 

 

최시형..

교주 최제우의 순교후에 함백산 자락에 은거하며 교세를 확장한다..

 

손병희..

최시형의 휘하에서 동학군 북접의 대장을 맡았다.

 

전봉주..녹두장군..

30대에 동학 접주가 되앗고, 한때는 2년간 대원군의 식객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대항하여 최초 동학군 봉기를 이끌어 조병갑을 쫓아냈는데, 

나중에 조병갑이 동학군 재판을 맡고, 최시형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아이러니..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요가 불려졌다..

 

금수저 탐관오리 조병갑

영의정 조두순의 조카.. 고부군수로 부임하여 모친 조의금을 2000냥을 강요하다가 이에 항의하는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을 곤장을 쳐서 죽게한다.

그리고 동진강변에 만석보를 만들고 물세를 강제징수하다가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전봉준 등은 사발통문을 돌리고 사람을 규합하여 봉기를 준비한다.

사발통문에는 "조병갑을 처형하고 전주성를 점령하고 한양으로 상경한다"고 나온다.

 

1894년  2월 15일(음력 1월 10일) 전봉준은 농민 1000명을 이끌고 만석보를 허물고 고부관아를 점령한다.

조병갑은 도주했다..

2006년 조병갑의 증손녀 조기숙이 노통의 홍보수석으로 취임한다. 그리고는 증조부 조병갑을 변명하다가 역풍을 맞는다..

 

 

조정에서는 서둘러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하여 고부민란을 수습하려고 하였으나, 안핵사가 동학교도 탄압 등 강경책을 쓰자, 관망하던 동학 무장접주 손화중, 태인 접주 김개남 등이 합류하여 전면 봉기한다.

1894년 5월 1일(음 3월 26일) 동학교도, 농민 1만명이 백산에서 집결했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말이 나왔다.

왜 백산이냐고?? 

그당시 백성들 옷이 흰색이어서 일어서면 들판이 하얗게 보였단다..

그러자 안핵사 이용태는 도주한다..

 

조정에서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삼아 신무기로 무장한 800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군산을 통해 전주로 향할 즈음 전주 감사 김문현이 감영의 군사를 동원하여 단독으로 토벌을 감행한다.

 

5월 10일(음 4월 6일) 감영군이 황토재(현)에 진을 치고  동학군과 대치하고 잇었다.

다음날 새벽 감영군이 기습을 하자, 대비하고 있던 동학군이 삼면으로 포위하여 괴멸시킨다..

 

동학군은 사거리 100보(60m) 정도의 화승총을 보유하고 있었고,

홍계훈의 경군은 독일제, 미제 소총, 쿠르프 야포, 개틀링 기관총를 보유하고 잇었다.

 

황토재(현) 전투 승리후 동학군은 바로 전주로 향하지 않고 남하하자, 홍계훈의 경군 300명이 추격한다.

5월 27일(음 4월 23일)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 동학군은 경군을 격파하고 지휘관도 전사시킨다..

기세를 몰아 전주로 진격하여 5월 31일(음 4월 27일) 무혈 입성한다.

이때 홍계훈은 전주 외곽 완산에 진을 치고, 기회를 노리고 잇었다.

6월 1일(음 4월 28일)- 6월 5일(음 5월 3일) 까지 양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홍계훈이 최신식 쿠르프 야포를 동원하여 동학군 500여명을 사살하는 등 동학군의 파상 공격을 격파한다.

 

 

 

완산전투후 동학군이 전주에서 후퇴하고 전선이 소강상태에 빠진 사이

고종이 청나라에 원병을 청하자, 6월 8일 청군에 이어 일본군이 조선에 진주한다..

상황변화에 자극을 받아 홍계훈과 동학군은 6월 11일(음 5월 8일) 전주화약을 맺는다..

이때 폐정개혁12개조를 제시한다.

동학교도와 정부는 서정(庶政)에 협력할 것
탐관오리 숙청

노비문서 소각
7종의 천인에 대한 대우 개선, 백정이 쓰는 평량갓(平凉笠)을 없앤다.
과부 재가 허락

인재 등용, 문벌 타파
일본과 간통하는 자 엄벌

 

8월 6일(음 7월 6일) 동학교도들은 호남 53곳에 자치행정기관인 집강소를 설치한다.

 

국내 사정이 안정이 되어 청일양국의 공동철병을 요구하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고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7월 23일(음 6월 21일) 일본군은 경복궁을 장악하고 쿠르프 기관포 8문, 개틀링 기관포 8문, 소총 3000정을 탈취한다. 

그리고 친일내각을 수립한뒤, 7월 25일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김홍집내각으로 하여금 7월 27일 갑오개혁을 추진하자 전국이 술렁거린다. 

9월 15일 청일간의 평양성 전투에서는 조선 관군이 양쪽에 붙어 서로 총질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8월 25일 정국을 관망하던 대원군이 자신의 식객이었던 전봉준에게 거병하여 일본군을 무찌르라는 밀지를 내린다.

일본군의 만행에 분개하던 동학 남접과 북접이 9월에 봉기한다.

전봉준의 남접 동학군 1만과 손병희의 북접 동학군 1만 등 2만명이 논산에서 집결하여 12월 5일(음력 11월 9일) 공주 우금치를 공격한다.

우금치에는 관군 1800명과 일본군 200명이 쿠르프 야포와 개틀링 기관포를 배치하고 대기중이었다.

최신무기의 위력에 동학군은 괴멸되고, 후퇴한다.

 

<개틀링 기관총>

https://blog.daum.net/servan/6350429

 

동학군 진압에 동원된 관군은 3200명, 일본군은 2000명이었으나, 최신 야포와 개틀링 기관포로 무장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하여 농민이 주력인 동학군은  패퇴를 거듭하면서 무너졌다..

 

한편,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군은 금산 - 신탄진을 거쳐 청주로 진격햇으나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배하고 후퇴한다.

전봉준은 12월 28일(음력 12월 2일) 순창에서, 김개남은  12월 27일(음력 12월 1일) 태인에서 각 체포되고, 처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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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상소동 산림욕장에 간다.

주차장도 넓게 정비되었다.

 

겨울 캠핑족도 만원이다.

 

대전에서 얼음을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명소가 되어간다.

 

얼음은 들여다 볼수록 신비한 느낌이 난다.

태초의 지구는 불덩이였는데, 어느 순간 지구표면에 그 많은 물이 생기고..

물이 증발하고, 비가 되고, 얼음이 되면서 신비한 생명이 태어나고..

우주의 낙원이 되었으니..

 

 

이곳에 처음 온 동행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전에 머들령을 가려고 이 등산로를 올랐었는데..참 빡신 구간이었다

https://blog.daum.net/servan/6350727 참조

기회가 되면 둘레길만 걸어봐야 겠다..

 

토깽이..

별주부를 농락하던 기상은 보이지 않네..

 

이 사진만 올리고 외국이라고 구라쳐도 통할 것 같다.

 

이 곳 돌탑 중 하나를 꼽으라면 물개를 골르겠다..

 

 

 

원래 대전 동구청이 2003년에 이곳에 돌탑 1000개 쌓기 운동을 전개하엿는데,

이에 호응하여 이덕상 선생이 2003년 - 2007년 사이에 신비한 모습의 돌탑을 쌓았단다..

 

달밤에 배를 띄우고 술잔을 나누는 풍경

배~~~띄~~워~라

송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https://youtu.be/FTU9qQyHoNI 

 

 

겨울도 재미나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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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산에 세운 절..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논산시 가야곡면 반야사..

 

법당의 발원이 주련으로 걸렸다.

소멸무량중제장(消滅無量衆諸障)

획득무량대지혜(獲得無量大智慧)

 

한량없는 중생의 모든 장애를 소멸시키고

한량없는 큰 지혜를 모두 얻으시라..

 

페광산의 터에 지은 절이 갑자기 뜬 이유는 젊은이들이 이 묘한 굴 안에서 찍어올린 사진 때문이다..

 

실크로드 막고굴을 연상시키는 풍광..

이른 아침에 방문하니 선잠깬 하늘에 조각달이 비추고 있다.

 

낯설고 아름다운 풍광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 뒤로 용궁회상이라 쓴 동굴법당이 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이 잠겼나 싶엇는데, 지름쇠를 옆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엇다..

참고로 이 절은 오후 6시이후에는 방문을 불허한다.

 

석회석 종유굴을 들어가는 느낌의 입구..

다시 내부 출입문을 여는 순간..짠하고 나타난 신비한 모습..

 

오색 휘황한 빛으로 장엄한 분위기 속에 천수관음이 계시다..

 

 

 

옆굴에 오묘한 공간이 이어진다.

언뜻보면 산신같기도 하고, 용왕 같기도 하다.

 

동굴안에 물이 흐르고..

코끼리를 탄 아기부처가 보인다..

 

동굴끝은 막혀있는데, 들여다 보니 깊이을 알수 없는 터널이 보인다..

 

동굴안에 물이 흐르고, 용궁회상이라 하엿으니 산신이 아니고 용왕을 모신 곳이라고 봐야겠지??

추운 날씨에 동굴안에 들어가니 안경이 김이 서릴 정도로 따뜻했다..

 

대웅전 외벽에 쓰여진 시들..

 

茫茫撥草去追尋(망망발초거추심) 
水闊山遙路更深(수활산요로갱심)
力盡神疲無處覓(역진신피무처멱) 
但聞楓樹晩蟬音(단문풍수만선음)

 

 

망망한 잡초를 헤치고 뒤쫓아 나섰는데
물도 산도 아득하고 길이 더욱 깊어지네
탈진하고 피로하여 찾을 길이 없는데
저문 날 매미 소리만 단풍 숲에서 들리네

 

무엇을 찾는다는 말인가?

소(牛)..

 

이시는 곽암화상 심우송 중 첫수 심우(尋牛, 소를 찾다)다..

 

이절 부처님이 좋아하는 귀절은 2수 견적(見跡, 소 발자국을 보다)이다..

 

水邊林下跡偏多(수변임하적편다) 
芳草離披見也?(방초리피견야마)
縱是深山更深處(종시심산갱심처) 
遼天鼻孔?藏他(요천비공즘장타)

물가의 숲 아래에 발자국이 유독 많은데
아름다운 풀 헤쳐본들 어찌 찾을 것인가?
하지만사 심산 속 더 깊은 곳소일지라도
하늘로 향한 콧구멍 무슨 수로 숨기랴?

 

소 찾는 일은 눈밝은 독수리에 맡기면 될터인데, 무슨 걱정이랴..ㅎ

하지만 요즘 소 찾는 사람도 없고, 소 키우는 사람도 없으니 , 독수리 할일도 없겠다..ㅎ

 

요사채에도 시한수 걸렸다..

 

蛾子搏燈火 (아자박등화)
忘生好自侵 (망생호자침)
莫言燈火惡 (막언등화악)
燈火本無心 (등화본무심) 
 
어린 나방이 등잔불에 부딪친다.   
살 길 잊어버리고 제 좋다고 스스로 침범하는구나. 
등잔불이 악하다고는 말하지 말라. 
등잔불은 본래 아무런 생각도 없었노라. 

 

모두 소걱정하는 절에서 돼지 혼자 웃고있다..

혼자 감잡았나??

 

때늦은 감만 중생 보시를 기다리고 잇다..

 

명색이 길꾼이라 주변 걸을 길없나? 둘러본다.

주변 길을 잘 다듬으면 멋진 둘레길 나올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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