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貴炘天從古死 (부귀흔천종고사)
貧寒到骨至今生 (빈한도골지금생)
億千年去山猶碧 (억천년거산유벽)
十五夜來月復圓 (십오야래월부원)

부귀가 하늘에 닿아도 언제나 죽음이 있고
가난이 뼈에 사무쳐도 오히려 살길이 있네
억 천년이 지나가도 산은 한결같이 푸르고
달도 보름밤이 오면 다시 둥글어지네.

 

- 석파 이하응-

 

https://youtu.be/kpnZrogwHfU

***

이하응이 몰락한 왕족 궁도령으로 세월을 속이며 지낼 적에 지은 시다..

보름달이 될 시기를 암중 모색하고자 하는 기운이 가득하다..

드디어 충남 덕산에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장하고 살아있는 대원군으로 권력을 잡는다..

그러나 권불10년..

아들과 며느리에게 권력을 빼았기고 쫓겨나 정적이 되는 파란의 인생을 산다..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 빈한시 후속편으로 부귀시를 지었다면 그의 인생이 바뀌었을까?

 

 

 

 

사무실 그림을 재배치 하면서 그림을 자세히 보니

대원군 이하응이 73세(1892년) 임진년에 그린 석란도다.

이하응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난을 배워, 추사로부터 "압록강 동쪽에서는 따를 자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왕족이니 립서비스가 포함되었겠지만..ㅎ)

그는 이미 67세에 수전증이 있어서, 왼쪽 그림에는 손 떨린 흔적이 있다는데 내눈에는 다 잘 그린 것같다.

 

 

外山大雅淸覽(외산대아청람)
산밖에서 크고 맑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壬辰末庚節 石坡 七十三歲 病夫作(임진말경절 석파 73세 병부작)

1892년말 庚(경)자 간지 날 석파가 73세의 병든 몸으로 그렸다.

 

이어서 대원군장(大院君章) 석파(石坡)라고 낙관하였다

 

그 아래  好花看到半開時(호화간도반개시) 도장이 찍힘

"예쁜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러간다"

 

소강절의 시귀다..

 

美酒飮敎微醉後  (미주음교미취후)

好花看到半開時  (호화간도반개시)
這般意思難名狀  (저반의사난명상)

只恐人間都未知  (지공인간도미지)
 
맛있는 술 마시고 약간 취한 뒤
어여쁜 꽃 반쯤 피었을 때 보러간다
지난 번 뜻은 형상을 말로 나타내기 어려운데 
다만 사람들이 모두 알지 못할까봐 두려울 뿐

 

왼쪽 그림 아래에는  일실지내유이자오(一室之內有以自娛)라는 도장이 찍힘

"방안에서 하는 내 오락거리"라는 의미로 보인다..

 

***

저 그림을 그린 1892년 그는 병든 몸이라 겸사를 하지만, 마음 속에는 불이 타고 있었다.

그해 봄 운현궁에 폭탄테러가 있었다. 그는 민비 세력의 자객과 폭탄테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고종과 민비를 쫓아내고 장남 이준용을 왕으로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1890년 - 1892년에 전봉준이 운현궁에 식객으로 잇었다.

전봉준과 대원군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여 장악하자, 대원군은 전봉준에게 봉기하여 상경하라고 밀지를 보낸다..

그러나 우금치에서의 패전으로 대원군의 꿈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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