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주걷기의 메인이 단석산인데, 단석산 설화의 주인공은 김유신이다..

우연히,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가는 둘레길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 걷기의 테마는 김유신이 되겠다.

김유신에게 명활산성은 김춘추와 함께 정권을 잡게된 터닝포인트가 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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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진평왕릉으로 간다..

숙소 경지당에서 가깝다. 경지당에서 읽은 신라왕릉 책에 의하면, 조선 18C경에 경주김씨 종중에서 조상묘 찾기 할때 진평왕릉으로 비정했단다.

그 이유는 진평왕을 한지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이 들판이 한지로 불리기 때문이란다..

한지란 북천의 범람이 잦아  홍수발생시 물을 가두는 유수지 역할을 하는 들판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근대의 조사에 의하면, 왕릉의 구조가 통일신라 시대 양식으로 드러나 신문왕이나 효소왕릉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진평왕릉은 북천의 홍수 때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왕릉에서 보면 딸인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보인다..

선덕여왕은 죽을 때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했다.

도리천이 어디냐고 했더니 낭산 남쪽이라고 했다.

낭산일대는 신유림(神遊林)이라 해서 천경림 등과 함께 신라초부터 소도처럼 신성시하던 숲이 있는 곳이었다.

낭산에 여왕릉을 설치하고도 신하들은 그곳이 도리천이라는 의미를 몰랏다.

그런데, 문무왕 때 대당전쟁을 하면서 승리를 기원하기 위한 사천왕사를  낭산 여왕릉 아래 신유림에 짓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불교적 천문관을 깨닫고 여왕의 예지에 탄복했다고 한다.

 

용비늘 갑옷으로 무장한 소나무가 왕릉을 호위하고 잇다.

진평왕의 딸 중에 선화공주 설화..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이고, 익산 쌍릉과 미륵사지 설화의 주인공 여부로 논란이 많다.

그러나, 진평왕- 선덕여왕 시절 신라는 성왕의 복수를 다짐하던 백제와 피어린 전투를 벌인 것을 보면, 그 진실여부가 아리송하다.

 

각설하고,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으로 가는 길 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헤메다가 큰길로 나가 북쪽으로 가다가 발견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길을 따라 수로를 쫓아 가는 코스가 둘레길이다..

 

이렇게 한참 떨어진 큰길가에 겨우 표지판 한개가 보인다..

 

 

길가가 모두 벚꽃이다..

벚꽃 만개한 날 다시와서 걸어야 겠다..

 

수로를 따라가는 길은 공사구간에서 일부 우회하는데..

거기서 명활산 등산로 표지를 만났다.

 

등산로 몇백미터 숨차게 오르니 명활산성 탐방로와 만났다.

북문과 남문의 중간지점..

 

일단 남문지로 가서 성안길로 북문으로 갈까 생각하고, 남문지로 간다.

 

하지만, 시간이나 정확한 정보가 없어 회군하여 북문지로 향한다..

 

북문지로 가는 길에 성안 연못을 만난다..

성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도중 고지에서 보문호와 북천을 조망한다.

명활산성은 신라 왕경을 방어하는 4대산성 중 하나로 동쪽, 울산 등지에 칩입하는 적을 방어한다.

 북천 양안으로 명활산과 소금강산이 자리한 협곡같은 지역이라 군사적 요지이다.

실제 신라초기 왜구들의 침략을 막앗던 역사도 있다.

북천은 경주 동쪽 함월산 등 고지대에서 발원하여 왕경이 있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형산강에 합류한다.

그런데, 경주가 태풍경로상에 위치하기도 하여 북천 홍수 피해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북천(알천)의 범람으로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명주군왕으로 밀린 김주원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또한 북천 홍수로 북천변에 위치한 헌덕왕릉 등이 유실되기도 했단다.  

 

북천 상류에 덕동댐과 보문호가 건설되면서 이제는 수량이 부족한 하천이 되었다..

하천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ㅎ

 

명활산성 북문지..

이쪽은 남문지와 연결되는 길 같은데, 지금 개통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선덕여왕 말기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다.

상대등이면 귀족 화백회의 의장격이다. 

선덕여왕이 병이 나자(50대 중반 추정)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친왕파 김춘추, 김유신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을 생각이었다 

반란군은 명활산성에 집결했다.

왕성인 월성에는 여왕파인 김춘추, 김유신등이 포진했다.

보문들을 두고 쌍방이 대치하던 밤..

유성이 월성으로 떨어졌다. 이를 보고, 반군의 사기가 충천했다.

김유신은 밤중에 연에 불을 달아 하늘로 날려 올렸다.

"별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분위기는 반전되어 김유신은 비담의 반란을 진압했다

여왕은 그 소동 속에 승하하고 최규하같은 진덕여왕이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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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그는 심리전, 선전술의 귀재이고, 합리주의자, 과학자였다..

"길흉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사람이 부르는대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봉황이 날았들었어도 은나라 주왕은 망했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어도 쇠퇴하였으며,

당 고종은 꿩새가 울었어도 흥하였고, 정공은 용과 싸우고도 흥성했다고 합니다" 

 

 

단석산에 수련하여 화랑으로 입신한 김유신은 대 백제전투에서 승승장구..

신진무장세력으로 전통 귀족들의 대표인 상대등 세력과 이곳 명활산성 대결에서 승리하여 진골 무열왕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삼국통일의 길로 매진한다.

우리 역사에 신하로서 왕으로 추존된 유일한 인물이다.

 

북문지에서는 진평왕릉 가는 길을 크게 써놓으니 좋다..

 

길가의 저 부처님은 왕년에 벚꽃 방창할 때 알현한 적이 있다.

모로코의 페스를 연상시키는 석물들..

 

진평왕릉가는 길에 벚나무가 즐비하다.

벚꽃 피는 날 오시라고 기약한다..

 

우측으로 북천 건너 소금강산 능선이 보인다.

다음에 저기를 걷자고 드림빌더가 속삭인다..

 

이길의 정식이름은 선덕여왕길이다..

진평왕릉를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이어지는가보다..

 

다시 등산로 입구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람불고 날이 추운데, 그동안 엄청 따뜻한 날씨였나 보다.

철모르는 개나리가 바람에 떨고 있다..

 

그때 단석산 상공으로 오색찬란한 상운이 나타났다.

삼국통일을 기원한 단석(斷石)의 에너지가 남북통일로 이어지는 조짐이 아닐까?

 

<오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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