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곡산성에서 내려와 차로 1.5.km 떨어진 고미당까지 이동한다.

거기서 다시 백제부흥군길 2코스에 위치한 학산산성을 올라간다..

 

고미당 옆 이 표지판이 입구다..

 

가마터??

250년전 사운고택(조응식 가옥)을 중건할 때 기와를 굽던 가마터란다..

 

 

사운고택 옆으로 학산산성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백제부흥군길 2코스 정식 노선으로 설정되어 잇다.

그러나, 나는 사운고택을 구경하다가 새로 만들어진 코스로 올라가게 된다..

 

학성산성 아래 사운고택 부근은 선사시대 고인돌, 삼국시대 석실묘 등이 위치한 오래된 터전이고, 양주 조씨 조태벽이 병자호란후에 입향하여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고택 앞에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천원지방형 연못이 자리하고..

 

 

 

솟을 대문 이름은 사운고택이다..

사운(士雲)은 누구인가??

문경현감을 지낸 조중세(1847-1893)다..

그는 문경현감 재직(1890년) 시절 흉년이 들자, 홍성 본가의 쌀을 가져다가 문경 백성을 구휼햇다고 한다.

이런 전통을 이어져 1894년 홍주의병 거병시 군량미 237두를 지원햇다고 한다.

 쌀 10두가 1섬이니, 23섬이고 대략 46가마 정도 된다..

 

사랑채에는 3가지 현판이 붙어있다.

정면에는 학산헌(鶴山軒)..

뒷산 이름을 딴 것이고..

 

옆에는 수루(睡樓)..잠자는 다락방..

 

그 아래로 천하태평 글씨와 건곤감이 주역괘가 그려져있다..

이 방에서 천하태평하게 잠을 자겠다는 뜻이니, 역모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간접표현한 것인가??  ㅎㅎ

 

건물 옆에는 우화정(雨花亭)..꽃비 내리는 집

자하 신위의 글씨..

방문한 날 벚꽃이 지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짓고 글씨를 써주고 간 모양이다.. 

 

자하 신위는 정조때 문신으로 당대 시,서,화 삼절로 불리던 사람이다..

참고로 그의 그림과 글을 볼까??

 

햇살은 얼어붙고 바람은 세차게 부르짖는데
누각의 그늘과 산의 먹빛이 합쳐져 흐리다
몽롱한 술기운에 자리를 모두 정리하니
사람은 조용하고 향연만 고요히 피어 오르더라
한점 눈발이 날아들어 벼루에 떨어져 녹고
서걱이는 소리 크게 나면서 찬 갈대가 흔들린다.
우연히 황공망과 미불을 참고해 수묵을 그리는데
돌연히 마음이 일어 대규를 찾아가는 그림이 되네.

<첫눈 오는 날 술마시고 그리는데, 황공망 화법인지 미불의 화법인지 아닌지>

 

***

주) 대규를 찾아간다..설야방대..

왕휘지(왕희지 아들)이 눈이 오는 날 흥이 나서 배를 타고 친구 대규를 찾아갔는데, 집앞에 당도햇을때 눈이 그치자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돌아갔다는 고사..

 

 

세월하쟁영 (歲月何崢嶸)

인생역쇠지 (人生易衰遲)

 

세월은 어찌 그리 잘가는지

인생도 금세 늙어가네..

 

 

화무십일홍..

길고 짧은 차가 있지만 필멸의 생명이기에 도리어 찬란하다..

 

장독대에 소주고리가 눈에 띈다..

이 집안에는 내려오는 전통 레시피 "음식방문니라"가 있다..

이른 봄에 새로난 솔잎으로 담근 송순주라는 가양주가 있고, 꿩고기와 붕어로 만드는 어만두라는 안주도 있다..

 

안채의 이름은 보현당..현명함을 보물처럼 여기는 방..이다..

 

주련은 추사의 글씨다.

고회부처아녀손 (高會夫妻兒女孫)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

 

최고의 모임은 부부, 자녀, 손자가 모일 때이고

최고의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 나물요리로다..

 

안사랑채 이름은 얼방원(乻方垣)이다..

안사랑채는 여성을 위한 사랑채로 일종의 별당이다.

그런데, 얼방원은 무슨 말일까?

얼방乻方은 백제 지역에서 임금과 관련이 있다..

백제왕을 어라하, 왕비를 어륙이라고 불렀다는데, 원음인 "얼"이 어른을 뜻하는 말이란다.

그리고 예전부터 이 지방을 얼방이라고 불렀는데, 얼방이라고 부른 것은 어른(즉 임금)이 잇는 땅이라는 의미로 본다. 

그런 의미를 담아 이집에 고유의 지명을 남기고 싶어 얼방원이라고 당호를 붙이고, 협문의 이름도 얼방문이라고 지었다..

 

그러고 보면, 말 그대로 얼방이란 지명이 남아잇는 이 지역이 백제의 마지막 왕성이엇던 주류성이  아니었을까?

 

안사랑채 옆에는 학산서재가 있다..

그런데, 이 집은 사운고택 또는 조응식 가옥이라고 표시하는데, 조응식은 누군가??

현대에 고택 문화재 조사를 할 때 당시 거주 후손 이름 조응식으로 등록하였단다..

 

집 주변에 만발한 작약을 보며 탁자에 앉아 점심요기를 한다..

시원한 그늘과 바람이 잠을 불러온다..

수루(睡樓)에 올라 천하태평의 봄꿈을 꿔보고 싶더라..

 

참새야? 너는 봉황의 뜻을 알겠느냐??

물론 대붕의 뜻이야 모르겠지만..

 

시비가 시비거는 공간에서 문득 학산산성 표지판을 발견한다..

그 순간 고택 옆 원래 임도길은 까막케 잊고, 이 표지를 따라나서니 새로운 루트엿다는...ㅎ

 

새로 개설한 것은 좋은데, 끝까지 보살피는 정성이 없거나,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길이 희미하니 중간에는 좀 헤맨다..

그러다가 겨우 겨우 새로 개설한 임도와 만난다..

 

이 새 임도길이 묵어 숲이 우거지면 괜찮겠다..

 

근데, 겁나 큰 말벌집이 보인다..

다행히 벌들은 다 이사갔는지, 아니면 이번 겨울 벌 몰살사태에 희생되엇는지..

 

 

금계국이 이길의 황량함을 보충해준다..

 

이제 원래 코스 임도길과 이어졌다..

 

학성산성으로 오른다..

 

성벽이 허물어져 돌무더기가 가득하다..

 

성 정상에는 학산정 정자가 잇다..

 

지세를 보니 무한천을 해자로 두른 듯이 임존성 - 학산산성 - 장곡산성- 오서산 이 장성처럼 늘어섰다..

한때 백제부흥군이 3만5천이 집결햇다니..

임존성만으로는 그 군대를 수용하기 부족할테고, 학산산성, 장곡산성도 비좁다..

내 생각엔 학산산성(아래 푸른 원), 장곡산성(붉은 원)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대현리 지역(네모 점선)에 임시 성을 지어 주둔하면서 주류성이라 부르고, 백성들은 얼방(왕성)이라고 부른 것은 아닐까? 

 

하지만, 대현리 분지를 주류성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주류성 후보는 1) 서천 건지산성, 2) 부안 위금암산성  3) 홍성 장곡산성 또는 학산산성이다..

삼국사기,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주류성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산세가 높고 계곡이 깊어 방어 하기에는 좋으나 땅이 척박해 장기전으로 싸우기에는 어
려운 땅
(2) 서북쪽으로 흐르는 백촌강에서 가깝다.

(3) 복신굴이 있어야 한다.
(4) 곡창지대인 피성으로 임시천도하는데, 피성은 사비성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5) 주류성 함락시 왜로 망명하는 경로에 부합해야 한다.

1)번 서천 건지산성은 (1), (3), (4) 요건에 부적합
2)번 부안 우금산성은 위 요건에 다 부합하는데, 임존성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잇다.
3)번 홍성 장곡산성(또는 학산산성)은 (1),(3) 요건을 갖추었는데, (2)번 백촌강을 무한천 및 아산만을 보아야하는 난점이 잇고, (4)번 피성을 당진 면천 몽산성으로 보면 요건에 안맞고, 공주 우성으로 보면 전술적으로 맞지 않는다..(5)번 잔존세력이 왜로 망명하기 어려운 조건이 된다..

 

***

(내 생각) 모든 것을 떠나서 자생적인 백제부흥군이 집결하는데는 임존성에 가까운 홍성 장곡산성 일대를 주류성으로 보는게 합당하지만, 왜의 구원군과 연합한다는 측면에서는 부안 우금산성이 부합할 것 같다.

백촌강 전투도 아산만으로 보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백강 일대와 당항진도 나당이 접수한 상태인데, 아산만까지 올라가 상륙작전을 전개한다는 발상은 맥아더라도 불가능할 것 같다)

따라서 현재 금강 이남에서 주류성과 가까운 곳을 찾는다면 부안 부근 동진강에서 백촌강 전투가 발생햇을 가능성이 크다.

신라도 남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왜 선단을 추적관찰하면서 부안 주류성 인근으로 군대와 함대를 출동시켰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백제부흥군이 한때 200여성을 회복하고 사비성을 포위했다면, 금강도하작전을 펴야하는 금강이북의 주류성 보다는 금강이남의 주류성이 전략상 유리햇을 것 같다.

강북 임존성의 흑지상지 군대가 적을 압박하는 사이  강남의 복신,도침의 군대가 후방을 들이쳐 사비성을 포위하는 전략 말이다..

 

또 한편에서는 풍왕이 강북과 강남을 왓다갔다 순시차 임시주둔하면서 군사의 사기를 위무했을 가능성이 잇다.

부안의 주류성에 머물다가 홍성 장곡산성에 머물기도 하는 바람에 역사서의 주류성 묘사에 혼선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잇다.

그러니, 부안 주류성이나 홍성 주류성이 모두 가능하고, 모두 백제 부흥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산성에서 내려오는 임도길을 쭈욱 따라오면 사운고택 옆 임도로 나온다..

 

<이번 걷기> 고미당 - 가마터 - 사운고택 - 신설임도 - 임도 - 학산산성  왕복 약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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