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마을의 입향조는 고려말 안동김씨 김자첨이다.
그가 사촌마을에 터를 잡을 때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비보 숲을 조성하였다.
이제는 그 나무들이 거목이 되어 제몫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겨울 끝자락이라 푸름이 사라지고 황량하지만, 초록 가득한 날 오면 멋진 정취가 살아나리라..
사촌마을은 안동 김씨 집성촌으로 고려명장 김방경 장군의 후손이다..
김방경 장군은 여원연합군 일본 원정시 고려군 사령관이었다.
어차피 몽고의 압력으로 정벌에 나섰지만, 벌어진 김에 그때 일본을 점령했다면, 지금껏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반일 감정은 좀 수그러졌을라나??
일본과의 악연은 후손에게 이어진다..
사촌마을 글씨 뒤로 만취당과 만년송이 보인다..
사촌마을의 종가는 도평의공댁이다..
입향조 김자첨의 아버지가 도평의공인데, 고려말 우왕, 창왕 시절 도평의사사에 종사하였기에 "도평의공 고려(옛집)"이라고 부른다..
그들 부자는 고려왕조에 대한 충의와 조선 개국세력의 틈바귀에서 낙향을 준비하였고, 아들 김자첨이 실행에 옮겼다.
그가 사촌마을 서쪽에 가로숲을 조성한 이유에는 세상 바람을 피하여 올곧게 살고 싶은 마음도 보탰을 것이다.
만취당(晩翠堂).. 물가에서 더디게 자란 소나무가 더 늦도록 푸르르다는 뜻이다...
조선 명필 한석봉의 글씨란다..
이 호를 쓰는 사람들 중에는 늦게 벼슬에 올라 출세한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권율장군을 들 수 있다.
그는 사위 이항복 보다 2년 늦은 46세에 과거에 급제햇다.
그리고 사위 이항복이 병조판서할 때 그 아래급인 도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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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김사원은 퇴계 이황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 집의 만취당 당호는 그의 증조부 송은 김광수와 관련이 잇는 듯하다.
송은 김광수(1468~1563)는 입향조 김자첨의 증손으로 연산군 시절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산의 폭정을 보고 대과를 포기하고 귀향한다. 그리고 집에 노송(향나무)을 심고 만년송이라 명명한다..
그의 호 송은(松隱)도 여기서 유래하는듯하다.
송은의 외손자가 서애 유성룡인데, 그는 외가집인 사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송은의 증손자가 만취당 김사원인데, 증조부의 만년송처럼 늦도록 푸른 기상을 잃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고 살아 인망을 얻고, 임진왜란시에는 의성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왜적과 싸웠다.
물론 송은의 외손자 서애 유성룡은 도체찰사가 되어 전쟁시 국정을 총괄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만취당의 집안은 곽재우 장군과 함께 화왕산성 농성에 동참하였다.
이때 우리 조상님들도 함께 했다는 인연이..ㅎ
송은이 만년송을 주제로 지은 시 두수가 만취당에 걸려있다.
일별조래문기시 (一別俎來問幾時) 조래산을 떠나 온지 몇 해나 되었던고
재봉창취만년자 (裁封蒼翠萬年姿) 푸른 빛 만년 가도록 고이고이 심었노라.
청향세세래시필 (淸香細細來詩筆) 맑은 향기는 은은하게 시쓰는 붓에 풍겨오고
잔자분분낙연지 (殘子紛紛落硯池) 송화 가루 날아서 벼루 위에 떨어진다.
엽밀유금제자재 (葉密幽禽啼自在) 무성한 숲에서 새소리 자유로이 들려오고
태반인갑노우기 (苔班鱗甲老尤奇) 노목에 이끼끼니 기린 껍질처럼 아롱진다.
앙장독립촌원리 (昻莊獨立村園裏) 홀로 우뚝하여 시골 마을에 서있으니
불허심싱속사지 (不許尋常俗士知) 보잘 것없는 선비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네
...
이끼 낀 오솔길이 홍진(紅塵)에 막혔으니
후미진 곳 차마(車馬) 어이 오랴마는
집이 가난하다고 꾀꼬리 울고 꽃피는 것 싫어하랴
산을 보고 앉았으니 어깨는 서늘하고
높은 베개 잠이 드니 푸른 빛이 낯을 덮네.
만년송(萬年松) 그늘 속에 한가로운 몸이라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 홀로 기뻐하노라.
어느날 만취당이 유성룡의 형 겸암 유운룡과 함께 퇴계선생를 방문햇다.
그때 퇴계가 만취당에게 주자의 관선재시를 써주었다.
負笈何方來(부급하방래) 책상을 짊어지고 어찌하여 찾아왔나
今朝此同席(금조차동석) 오늘 아침 이 자리에 맞이하고 앉았으니
日用無餘事(일용무여사) 매일매일 글공부로 모자람이 없어야지
相看俱努力(상간구노력) 서로서로 지켜보며 함께 노력하시게나
만취당은 이시를 받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과거 공부가 아닌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고택 안에 미국 후손이 보내온 수석이 가득하다..
이 돌돼지는 복을 불러 올라나??
요 돌에게는 콜로라도 강과 그랜드 캐년이 잘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고택 앞에 병신병란백주년 비석이 서있다??
병신병란??
을미년(1895년) 민비가 일제에 의해 살해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성에서는 다음해인 병신년(1896년) 의병이 일어났다.
유림들이 의성향교에서 논의하여 사촌마을 사람 김상종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궐기하였다.
그리고 62일간 관군과 싸웟다.
사촌마을에 의병기념관이 있다..
화승총, 죽창, 괭이로 무장한 유림 양반과 백성들..
의병궐기 8일만 남대천변 구봉산에서 첫 전투가 벌어졋다.
적 20여명을 사살하고 승리를 거뒀다.
궐기 40일째 관군이 역습을 했다.
의병 27명이 전사하면서 패했다.
다른 지역 의병과 연합하여 100여명의 병력을 보충하여 산운천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일진일퇴하다가 서울서 내려운 관군에게 밀려 물러났다.
중과부적을 실감한 의병장 김상종은 의병을 해산했다.
일제가 의병을 공격할 때 사촌마을 한옥 수백채가 불탔는데, 다행히 만취당은 살아남았다..
중시조 김방경 장군의 여원연합군 이후 임진왜란, 구한말 병신병란 까지 사촌마을 대일투쟁은 늦게까지 푸르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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