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마을의 감동을 가지고 고운사로 간다..

 

등운산 고운사..

주차장이 넓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찰관람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인상적인 것은 일주문에서 조계문까지 1km 거리의 포장안한 숲길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 것이다.

옛날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개천은 아직 얼음이지만 길에는 봄이 가득하다..

 

8죽시를 지은 부설거사는 신라 무열왕 때의 도통한 거사..

 

위 시는 삼수갑산에서 생을 마친 경허의 시신을 다비하면서 만공이 읊은 시라는 말이 있다.

 

시비에 물들지 않는 여여한 나그네

난득산에서 겁외가를 그쳤네

당나귀와 말 태워 재가 되니 날이 저물었는데

먹지 못한 두견새 솥적다 한탄하네..

 

 

원래 이름이 고운사(高雲寺)였는데, 고운(孤雲) 최치원이 여지,여사 스님과 함께 절을 중건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단다..

 

조계문 지나자 마자 고불전이 있는데, 정말 고불이 계시다.

눈도 코도 없는  소처럼 앉아있다.

 

이어서 개천 중간에 다리형식의 누각 가운루가 나온다..

 

가운루..구름 마차같은 누각..

이 행초서의 글씨가 공민왕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때 노국공주와 함께 안동까지 피난온 적이 잇어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 절 안내문에는 그런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썰"이 아닐까 한다..

 

가운루 뒤 우측으로 우화루 건물에 고운사 현판을 보면..

 

壬寅仲夏李銖澈十歲書라 적혀있다.

1902년 여름 이수철이라는 열 살 아이가 썼다는 뜻이다.

서예 신동 이수철(李銖澈, 1893~1909)이 10살 때 썼다.

그러나 그는 열일곱에 요절해 우두산에 묻혔다.

 

약사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시대 석조여래좌상이 계시다..

 

연지암..

이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한다..

 

또 하나의 보물은 영조의 어첩을 보관하던 연수전이다..

만세문을 지나면 연수전이 나오는데..

만세, 연수가 영조의 만수무강을 비는 의미다..

 

만세문을 세우고 연수전을 지어 조선 최장수 왕이 된 영조도 81세 밖에 못살았다.

한백년도 못사는 인생이여! 

어찌 이리 아둥바둥하는가??

 

우화루(雨花樓)..꽃비가 내리는 누각..

영화 리틀부다에서 마군들이 싯달타의 성도를 막기위해 화살을 쏘자 모두 꽃으로 변해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지금은 카페로 변신중이다..

 

카페 안의 현판은 우화루(羽化樓)다..

우화등선(羽化登仙)..날개가 돋혀 신선이 된다는 도교적 이름도 가지게 된다..

 

잠시 들러 연꿀빵과 커피를 마시려 폼잡다가 뜨거운 커피를 쏟아 버렸다 

커피 쏟고, 바지버리고, 허벅지 살 디고, 차탁과 바닥 지저분해지고, 쪽팔리고..ㅎ

그런데... 직원 와서 상냥하게 치워주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주인장이 커피를 다시 공짜로 제공한다..

헉..내 마음에 꽃비가 내린다..

개그콘써트에서 휴먼 다큐로 바뀌는 순간..ㅎ

감사합니다..ㅎ

 

감동을 안고 우화루를 지나면 호랑이가 부른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어디서나 너를 주시하겠다..

 

정말 좌로 가도, 우로 가도 나를 계속 노려본다..

"저, 저는 감동먹은 죄 밖에 없는디유.."

 

의성걷기여행은 휴먼다큐로 막을 내린다..

고운사, 우화루 오랫동안 잊지 못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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