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걷기-7월모임
양산8경으로 알려진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금강을 걷는다..
우선 송호리의 송림에 집결하여 송림에서 소요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우리의 적송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다..
이런 소나무가 여기에 가득하다..
여름이라 텐트도 가득..
강변으로 가는 오솔길이 정겹다..
이곳으로 오는 길..옥천 이원에서 영동 양산으로 오는 도로에 고라니 모자가 산보한다..
차량에 놀라 모자가 죄우로 헤어졌는데..서로 만났는지..
이 강가에 까치 2마리와 까미귀 2마리가 죽어있다..
2마리가 태그매치로 혈투를 벌였는지..
이 강물은 진안고원를 흘러온 본류와 금산의 지류가 금산 제원에서 합류하여 이곳으로 내려온다..
이 송림에 신라시대 노래 양산가 노래비가 잇다..
이지역도 백제와 신라의 분쟁지역이었다..
아마 무주의 나제 통문..보은의 삼년산성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이곳도 한데는 국경지역이었나 보다..
양산8경 중 6경인 여의정..
예전의 만취당 터에 1935년에 후손들이 콘리리트로 정자를 지어 여의정이라 한다..
일행중 누가 1970년대 박통시절 복원한 것 아니냐고 궁시렁 거린다..
때로는 뜻하지 아니하게 누명도 쓰는가 보다..
강 상류 송호리(금산쪽) 풍경이다..
저 뒤에 보이는 산이 양산 제1경 영국사를 품고 잇는 천태산이다..
여기는 양산 제2경 강선대의 풍광이다..
절벽위에 정자..
조선전기 임백호가 들러 시도 한수 지었단다..
정자에 임백호의 시는 없다..
임백호(임제(林悌, 白湖)는 평안도사로 부임해 가는 길에 황진이(黃眞伊)의 무덤을 찾아 술잔을 올리고 제문을 짓고 읆었다는 시조..일행 중 한분이 읊는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여기서 풍광응 바라보니 잔잡아 권할 이 있으면 시는 절로 솟겠다..
신선이 내려와 놀앗다는 강선대.. 안내판에는 降仙臺라 써있는데...
현판에는 降僊臺로 써있다..둘다 신선 선자이니 이리 쓴들 저리 쓴들..
채하정 현판이다..
원래 강선대 옆에 이었다가 300여미터 떨어진 강가에 잡초 속에 서잇다..
노을이 아롱지는 정자라는 뜻의 아름다운 이름에 비하여.. 너무 적조하다..
봉곡교를 지나 봉곡리 강변을 모래와 자갈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길이 끝난 곳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든다..
구름 천막이 처져 일광을 차단하고..
반찬 돌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차츰 걷기 모임이 오찬모임화 한다는 평까지나올 정도로..
식사후 물수재제도 뜨고..배도 불러 걸어나오는 길에 달맞이 꽃이 달을 기다리며 졸고 있다..
저멀리 양산 팔경3경인 비봉산이 우뚝하다..
청년들 천렵도 구경하고 오다 봉곡리 둥구나무아래 앉아 잠시 숨을 돌리며 걸어온 강을 바라본다..
영동으로 흘러가 상촌면 물한계곡에서 내려오는 지류와 합류하여 서류한다..
다시 길을 나서 양산 8경 5경인 함벽정을 찾아 나선다..
봉곡리 턱골로 들어가라 해서 갔다가 소위 알바를 했다..
알바..알지 못하는 길로 방황하는 것을 알바라 하는지..^^
일행 반은 두려움(?) 속에 남아 후미를 지키면서 퇴로를 확보하고..ㅎㅎ
나머지는 무대뽀 정신으로 잡초에 묻힌 길아닌 길로 나간다..결국 길을 묻던 동네 입구로 통하고..
함벽정 가는 길은 찾지 못햇다..
점심에 한입 얻어 먹은 풋사과 맛이 제법 들었는데..
여기에 가득 열려 익기위해 수련중이다..
어느 분이 점심자리에서 신혼부부가 좋하는 새는? 하고 물엇다..
답이 "잠자리"라고 하자..일행은 잠자리가 새로 진화했냐고 웃는다..
장마가 물러간 하늘엔 잠자리가 가득하다..
점식후 함벽정 찾아가는 길에 이슬비를 좀 맞기는 햇지만 이날의 걷기는 정말 풍백, 운사, 우사께 감사들여야 할 정도로 절묘한 날씨엿다..
봉곡리 장승이 마지막 축언을 해주신다..
"충청인 어절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