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혜암을 지나 정상으로 계속간다.

진달래가 엔딩이 아니라 엔드리스로 이어진다.

 

울퉁불퉁 바위들이 모여선 장소..

용봉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전설이 있다.

백월산과 용봉산이 중간지점 마을에 사는 노래 잘하고 이쁜 송가인 닮은 소향아씨를 두고 돌싸움을 벌였다.

백월산은 힘이세서 돌을 엄청 던져 용봉산을 이기고 소향아씨를 차지했다.

그래서 백월산보다 용봉산에 돌과 바위가 많아졌다는 이야그 올씨다..

 

중턱에 이르니 멀리 예산 봉수산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홍주경기장이 보인다.

경기장 뒷편에 왕년에 활쏘던 홍무정이 잇는데..ㅎ

 

막판 스퍼트..수직계단을 살곰 살곰 올라간다..

 

팔각정에 오르면 꽃과 나비가 너울 너울 춤추는 화접세상이다..

https://youtu.be/k1AiXrESNTA

 

 

얼굴바위..

정말 닮앗다..

 

코뿔소 바위..

코부분이 매력 포인트..ㅎ

 

이 코뿔소는 문신을 하고 꽃을 들고 사랑을 고백한다..

누규??

안면도(安面島)??

 

선녀가 우주선 타고 내려왔나?

우주선 불길로 땅이 정화되었나??

아니면, 선녀가 번질나게 내려와서 그런가???

 

그 뒷바위가 엄마에 기댄 아기 모습이라..

여기서 빌면 아이가 생길 것 같기는 하다..ㅎ

 

홍후만전묘..청난사라고도 한다.

홍주 목사 홍가신을 모신 사당이다..그의 호가 만전(晩全)이다

오늘 보니, 사당앞에서 무녀인듯한 사람이 불면증 환자를 치유하는 소박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홍주목사 홍가신은 백월산신이 되었을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 1596년 부여 홍산에서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때를 배경으로 하고 잇다.

이몽학은 의병 모집 명분으로 세력을 모아  7월 6일 부여 홍산에서 거병하여 부여 임천, 청양, 정산, 대흥 등 3일만에 6고을을 점령한뒤 7월 9일 승세를 몰아 5천병력을 이끌고 내포의 맹주 홍주성을 공격한다.

홍주목사 홍가신은 인근 보령 오천성에 주둔하는 수군절도사 최호의 병력을 끌어들이고 남포, 보령의 군사도 집결시켜 방어에 들어간다.

또한 충청순찰사 종사관 신경행, 무사 박명현, 임득의 등 무사와 함께 평소 활터에서 수련하던 활꾼 수백명을 차출하여 만전의 준비를 갖춘다.

이윽고, 초반에 박명현이 출전하여 반란군 선봉을 급습하여 기세를 꺽고, 이어 대치 상황에 이르자, 밤중에 총통과 화전을 쏘아 반란군 막사와 민가를 불태우자 적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상황에 비까지 내리자 기세가 꺽인 이몽학이 7월 11일 새벽 퇴각한다.  이때를 노려 대반격에 나서니 반란군은 괴멸되고, 이몽학은 부하에게 피살되며 반란은 진압된다. 

 

***

반란 평정후 청난공신을 책봉하는데, 

홍주목사 홍가신이 1등 공신, 충청수사 최호, 선봉으로 활약한 박명현이 2등공신, 전 병사 신경행과 임득의가 3등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이들은 임진왜란시 호성공신, 선무공신 등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홍가신..

그는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고, 퇴계 이황에게도 배운 사람이다.

이순신과 사돈관계이다(홍가신의 아들과 이순신의 딸이 결혼햇다)

광해군 2년 형조판서를 끝으로 퇴임하여 아산에서 살았다.

 

최호

충청수사 재직시 청난공신이 된후 정유재란시 충청수사로 원균휘하에 참전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박명현

무과급제자로 이몽학의 난때 홍주성에 참전하여 반란군을 청양까지 추격하여 괴멸시킨 공로로 청난공신이 된다.

그는 광해군 때 임해군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죽고, 공신첩도 박탈된다.

 

임득의

청난공신이 된후 경상우도병사를 지낸다.

 

신경행

당시 충청순찰사 종사관이었는데, 홍주성에서 공을 세워 청난공신이 되고, 광해군 때 충청병사를 지낸다.

 

 

이몽학의 반란 여파로

전국 의병장들이 의심을 받게 되고, 이후 의병활동이 위축된다. 

특히 호남의 의병장 김덕령은 고문 받다가 죽게 되고, 곽재우도 몸조심하게 된다.

이는 정유재란 초반에 고전하는 이유가 된다..

더구나, 선조은 인기있는 장군들도 의심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이순신이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 회생했다..

그때 선조가 이순신을 죽였으면, 조선의 앞날도 예측하기 어려웟을 것이다..

 

**

어쨋거나, 홍가신은 그뒤 이 지역 백성들 마음 속에 은인으로 자리잡아 "백월산신"으로 모셔지고 잇다

사당안에 홍가신과 그 가족의 목각, 공신 위패들이 모셔져 있다.

현재도 무속행사가 행해지고 있는 현장이다..

 

이몽학의 난 때 억울하게 죽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타는구나.
저 산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내 몸에 연기 없는 불은 끌 물 없어 하노라.

 

팔각정에서 정상까지는 50미터 더가야 한다..

 

코끼리 바위라는데, 글쎄??

지나고 나서 보니 오히려 강아쥐 바위가 맞는데?? ㅎ

 

백월산 정상이다. 

394m에 불과하지만, 포부는 서해안 3대 월산을 자부한다.

황해도 구월산, 영암 월출산, 다음이 홍성 백월산이란다..

그리고 여기는 현역 산신도 계시는 곳이다..ㅎ 

 

정상에 앉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홍주성 동헌 자리가 보인다..

 

 

 

동쪽으로는 예산 봉수산이요..남쪽으로는 오서산이 우뚝하다..

 

북쪽으로는 용봉산이로다..

정상에 앉아 점심요기를 하면서 한참을 앉았다.

왕년에 활쏘고, 단소불던 시절을 떠올렸다.

***

2000년초반 이야기..

1) 홍성에 근무하러 갈 때 사람들이 당부하는 말이 "홍성에 가면 투서를 조심하라" 였다.

어떤 사람은 홍성에 가면 동네 슈퍼에서 법전을 판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결혼 혼수 중에 법전이 들어있다는 말을 들엇다는 농담도 했다.

겪어보니, 홍성 사람의 기질이 불의에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심하게 갑질을 하면 과감하게 투서하는 것이다. 반대로 공정하게 처리하면 사람들이 고마워 할 줄 안다.

 

2) 홍성 사람 기질을 이야기하려면, 홍성 출신 위인을 거론해야 한다.

  최영장군, 사육신 성삼문,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등이다..

이 말을 듣고 "제명대로 산 분은 없는 것 같네"하고 농담을 했지만, 그만큼 이 동네 기질이 백월산처럼 굳세고, 용봉산처럼 강건한 것 같다.

비슷한 기질의 동네를 거론하자면, 호남의 목포, 영남의 마산 쯤 되지 않을까??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는 백월산 정상을 지나 병오의병비로 향한다..

병오의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에 의병이 봉기했다.

홍주(홍성)에서는 이듬해 1906년 병오년에 의병이 봉기했다.

민종식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전답을 팔아 의병을 모집했다. 

1906년 5.19. 백월산 아래 금마평(현 병오의병비)에 의병 600명이 집결했다. 

대포 2문을 앞세우고 홍주성 동문과 서문을 공격하자, 일본군민이 북문으로 도주했다.

홍주성을 점령하자 일본군 400명이 반격해왔다.  

5. 31. 새벽 홍주성을 빼았겼다. 체포된 의병장들은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의병의 유해는 홍주의사총에 안장되었다. 

 

활공장을 지나 하산하려다가 원래 계획대로 원점회귀한다..

 

<오늘 걷기> 이응노생가 - 산혜암 - 팔각정 - 청난사 - 정상 - 원점회귀 약 6km

홍성으로 간다.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구간을 걸으러..

얼마전, 동행이 무릎 부상을 입어 혼자 가는 길..

이제는 나이에 맞게 코스완주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걷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2코스 중 이응노생가 - 백월산 정상 사이를 왕복하는 6km를 걷기로 한다..

**

이응노생가에 도착하기 2km 전 용봉산이 보이는 동네에 연분홍과 진분홍 매화가 멋지게 피었다.

차를 돌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깊이 감상한다.. 

 

성장한 차림의 요염한 여인이 유혹처럼 치명적인 아름다움..

 

반면, 백월산은 하얀 벚꽃의 시중을 받고 있다..

낙화로다..꿈이로다.. 

노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듯하다..

 

벚꽃이 버들과 만나니, 시 한수가 생각난다..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는 검은 머리였는데 저녁에는 눈처럼 백발이 되었네

 

여기서는 우여청사좌성설(左如靑絲 右成雪)..

우측에는 푸른 실이 걸리고, 좌측에는 흰 눈이 내렸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개울건너 생가로 간다..

 

고암(죽사) 이응노..

구한말 왕실화가 해강 김규진으로 부터 한국화를 배우고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화를 그렸다.

한국화, 서예, 서양화를 아우르는 서예추상, 군상 등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그의 그림과 인생은 나중에 대전 이응노미술관 구경까지 한 후에 별도 글로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걷기에 집중한다..

 

그러한 잠시, 복사꽃이 눈에 들어와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평생 같이 살라면 질리겠지만 봄날 한철은 같이 살기 좋은 꽃..ㅎ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버드나무에게 다가간다.

버드나무 최고의 시는 하지장의 "영류(詠柳, 버드나무를 노래함)"다..

 

이월춘풍사전도(二月春風似剪刀)라는 명귀를 쓴 시인

"(음력) 이월 봄바람은 가위같구나"

버드나무에 신록의 나뭇잎이  올라오는 모습을 마치 봄바람이 가위질하여 오려 붙인 것처럼 묘사한 감각이 너무 현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碧玉妝成一樹高 
萬條垂下綠絲? 
不知細葉誰裁出 
二月春風似剪刀 

 

벽옥장성일수고
만조수하록사조
부지세엽수재출
이월춘풍사전도

 

푸른 옥빛으로 단장한 키 큰 버드나무
가지마다 푸른 끈을 아래로 드리웠네
저 가느다란 잎은 누가 오려 만들었을까
(음력) 이월의 봄바람은 가위와 같구나

 

***

어디 그뿐이랴, 김구선생이 인용하여 유명해진 시귀도 있다.

월도천휴여본질 (月到千虧餘本質) 

유경배별우신지 (柳經百別又新枝)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은 그대로이고

버드나무는 백번 부러져도 다시 새가지가 돋는다.

 

***

대중가요 실버들, 애교있는 투정도 멋지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실버들 천만사 늘어진 물빛에 비친 백월산의 풍광이 오늘 걷기의 즐거움을 예고한다..

 

용봉산은 벚꽃비를 맞으며 장도를 환송한다..

 

왜가리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아침부터 웬 신파여~"

 

왜가리가 뭐라카든 매화와도 눈인사하고, 수선화와도 딥인사를 한다..

 

이응노생가옆 전시관으로 들어가 전시품을 감상하고.. 

 

그는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하던 중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1969년 사면되어 파리로 떠났다.

1977년 부인 박인경이 백건우,윤정희부부 납치미수사건에 연루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1983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고,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다.

그의 작품은 대전시에 기증되어 2007년 시립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하였고, 

2011년에는 홍성 이자리에 이응노생가가 복원되었다.

 

카페 벽이 쓰인 수상한 저 글씨 "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스탈린"

1937년 스탈린이 소련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우즈벡, 카자흐)로 강제이주 시킨 사건을 의미한다.

정추..라는 사람과 관련된다.

그는 광주 출신인데, 해방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56년 장학생으로 소련 모스크바 유학중 남로당계 숙청사건에 자극을 받아 쏘련에 망명한다. 그후 카자흐스탄에서 음악활동을 하였다. 

그가 작곡한 <극적 교향조곡>에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원동(연해주) 한인 강제 이주 희생 에 대한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는 1991년부터 고향 광주를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 음악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쏘련이 붕괴된후에는 카자흐스탄 시민권자가 되었고, 2013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망했다.

 

***

정추의 행적과 완전 대비되는 사람이 윤이상이다..

윤이상..

한국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1956년 파리로 건너간후 서베를린에 정착한다..

윤이상은 1963년 방북하는 등 친북활동을 하다가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다가 1969년 특사로 석방된다.

그는 1971년  서독국적을 취득하고 친북활동을 이어가고, 한국내 활동은 금지되어 생전에 고향 통영을 방문하지 못한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

해방전후, 좌우의 대립, 이념과잉의 시대에 지식인, 예술인의 삶은 마치 봄날의 꽃처럼 다양하게 피고 지었다..

누구를 탓하랴~, 시대를 탓하랴~

 

이제 백월산을 향해 출발한다.

명자꽃이 자주고름을 입에 물고 뜨겁게 환송한다..ㅎ

 

벚꽃 엔딩..오늘 지대루 만났다.

입김만 스쳐도 휘날리네~~

 

철쭉부대가 착검을 하고 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보무도 당당히 주택가로 걸어들어간다..

 

 

거기서 복사꽃을 또 만났다..

오빠..나 좀 봐!

참 곱다..ㅎ

 

주택가 끝에서 산길이 시작된다..

 

아니?? 진달래..너 마저??

여기는 시간이 거꾸로 도나??

엔딩을 맞을 꽃들이 이리 싱싱하게 지천이네...

 

야는 자두꽃인가??

 

진달래가 유혹하는 대로 으슥한 샛길로 들어섰더니..

헉... 별천지네..

 

진달래, 벚꽃..자목련까지 춘정을 못이겨 땡땡한 몸매를 가누지 못하고 베베꼬꼬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흰꽃과 백구가 하얌을 다투는 산사..

무쟁삼매는 어디 갔는고??

 

부처님은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산혜암 대웅전 벽에 달빛이 곱게 내려앉았는데..

이곳이 예전에 월산성(月山城)터였음을 증명하네..

 

 

백월산 올라가는 길에 만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백구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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