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를 보고..

분노한다..

동시대에 이런 만행을 보면서 산다니..

4명의 사이비 교주들의 패턴이 일정하다..

 

세뇌 - 우상화 - 반대자에 대한 폭력과 공포 - 섹스, 돈 갈취 

이 과정에서 신도들은 중독환자처럼 비판능력을 잃고 순종한다..

 

이런  현상이 어디 종교 뿐이랴...

우리 정치현장에서 난무한다..

북한의 독재자, 조국의 추종자들, 개딸...모두 중독환자처럼 자기 판단능력을 잃고 개떼처럼 몰려 다니며 물고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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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명절처럼 보내는 영국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기준은 무얼까?

 

1) 비싸지 않고

2) 웃겨야 되고

3) 쓸모와는 거리가 먼것

 

예를 들면, 형수 케이트가 미혼인 해리에게 "나만의 여자친구 키우기"키트를,

해리는 엄마에게 비속어가 적힌 샤워캡을 선물하는 식이다..

 

아마도, 선물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지혜 아닐까 싶다..

***

 

이와 정반대로 우리 집안은 쓸모있는 것을 선물로 골랐다..

정말 재미없는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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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기간 4년 vs 1년 6월

지원         소폭 vs 전폭

결과          16강 vs 4강

 

벤투와 히딩크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16강전 대결과 비교해보자 

벤투는 브라질에 4:1로 지고, 히딩크는 이태리를 2:1로 이겼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1. 벤투호는 체력이 딸렸다.

    8강을 가려면 5경기를 소화시킬 체력이 필요하다..

 

2. 벤투 감독은 선수를 보는 촉이 부족하다..,

    히딩크는 안정환을 승부사로 잘 활용하여 이겼는데

   벤투호는 히든 카드 이강인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3. 벤투는 히딩크보다 감정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

    화를 내다가 퇴장당하면 어쩌나??

    하긴 퇴장당해서 그가 없으니 선수가 더 잘 뛰더라만...

 

 

 결론적으로 벤투는 선수를 보는 안목이 히딩크보다 부족하다..

앞으로 8강을 목표로 한다면 그는 아웃이다..

 

참고자료 : https://www.leaderpia.com/news/articleView.html?idxno=421

 

11%의 확률..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그는 불굴의 투지로 뛰었고, 가랑이 사이로 천금의 패스를 성공시키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에게는 불굴의 투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꺽이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본기(볼 트랩핑, 완급조절이 가능한 킥)가 있었다..

영국 BBC는 그의 마스크 투혼을 손트맨 이라고 칭찬했다..

 

내가 보기엔 임진왜란 이후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마인드를 완벽히 장착한  사람이라고 본다..

이순신마인드란 충실한 기본기에 자신만의 특기까지 장착한 실력과 꺽이지 않는 마음까지 갖춘 상태를 말한다..

그는 "벤투감독이 벤치에 앉은 마지막 경기"를 위해서 노량해전에 출전하는 이순신마인드로 출전하려고 한다..

꺽이지 않는 마음 으로 브라질 전에도 매진하리라 믿는다..

그래도 더 이상 부상을 당하지는 않기를 기도한다.. 

 

김천시(옛날 금릉군) 어모며 능치리 도치랑 마을이 있다.

어모면은 마한시대 어모국이었고, 삼국시대 금물현이었다가 통일신라시대는 어모현이 되었다.

능치리는 능점미을과 도치량 마을의 글자를 따서 능치리가 되었다.
능점마을은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공들이 모여 한마을을 이를 정도가 되어 능점(能店)마을이라 불리고

도치랑 마을은 옷나무를 채취하여 사는 동네라 해서 도칠랑(塗漆廊)이라고 부르다가 도치랑이 되었다.

 

일제시대 도치랑 마을에 절이 있었는데 나운몽이라는 청년이 양자로 들어왔다가 1940년대 기독교로 전향하여 나장로라는 이름으로 뒷산 용문산에 기도원을 만들고 1960년대 기독교 부흥회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용문산(龍門山)은  그 이름과는 달리 산세가 곰을 닮았다고 하여, 상주 공성면 쪽에서는 곰실, 웅산으로 부르르고, 상주 공성면 장동리 쪽에서 곰발바닥을 닮았고 해서 장동(掌洞)이라고 부르고, 영동 추풍령면쪽 마을에서는 곰뒷마을, 웅북(熊北)이라고 불렀단다..

용문산 정상인 국수봉에는 웅신단터가 남아 있어서, 2012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국수봉을 웅이봉(熊耳峰)으러 변경하였다 한다..

 

***

이 도치랑에 액운이 낀 적이 있었다.

1960,70년대  마을의 소가 원인 모르게 죽기 시작하고 사람도 사고 등 이유로 10여명이 죽었다.

이 마을에 교회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은 도치랑 마을에 교회가 3개, 능치리 전체에 10개의 교회가 들어섰다.

외국에 선교봉사도 한다.

 

**

불운의 시절, 이 동네 한처녀가 살앗다. 

10초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5녀1남의 맏이로서 소녀 가장이 되었다.

어느날 밤 계시를 받았다. 

8살 년상의 청년과 결혼했다.

청년은 4명의 처제와 4살짜리 처남을 같이 키워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그 부부에게 참으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나는 동네이름을 도치랑(道治廊)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라고 하신 예수님이 다스리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나는 거기서 그저 생활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도치랑(道致郞)이라고 풀이하고 싶다.

예수님에게 다가 가려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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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에서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굴밍이"라고 불렀다.

족보에는 군명(君明)이라는 써있어서 자가 군명이고, 이를 경상도 식으로 굴밍으로 발음하는 줄 알았다. 

원래 못살던 집안이라 집안내력과 족보에 관심이 없었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도치랑외사촌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군명의 정체를 알았다..

김천시 감문면 은림리 군명마을이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 전인 1590년 수원 백씨 집안에서 처음 마을을 열고 군자가 많이 나오라는 의미로 마을이름을 군명(君明)이라고 지었다.

이 말이 경상도 식으로 발음하다 보니, 굴밍>> 굴미가 되고, 현재는 굴미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또 윗마을을 상군마을, 아랫마을을 하군마을이라고 구별해 부르기도 한다.

 

***

그런데 부친은  왜 굴밍이(군명)로 불리게 되었을까?

집성촌이라 장가를 가면 처가 동네 이름을 택호처럼 부르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 택호가 군명, 굴밍이가 되었던  것이다..

거꾸러 따져보니, 어머니는 도치랑에서 시집 간 것이 아니고, 군명마을에 살 때 시집을 간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시집을 간후 외삼촌은 도치랑으로 이사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도치랑에는 외삼촌 큰누나(큰 이모)가 살고 잇었다..

이제야 묵은 족보가 해결되었다는..ㅎㅎ

 

도치랑(또는 굴미)에서 거배미로 시집갔던 엄마가 쓰던 단어들

 

 

아그바리 :  몸이 심하게 망가진 상태,   예) 아그바리처럼 걷는다.

으짓잖다:  체구가 작고 초라함, 의젓하지 않다. 

하랑산    ; 넓고 큰    예) 하랑산 같은 바지

이말모지 ; 헛일 하는 셈치고,  에멜무지   예) 이말모지로 얘기 하는데

야지리기 : 빠짐없이, 야지리    예) 야지리기 다 해라

허바리 : 아무거나 덥석 좋아하는, 허발이

벤댕이속아지 : 아주 속 좁은 

짬단이 : 뚱단지 같은 소리하는 사람

이지가지 : 여러 가지

겉닥다리 : 겉도는 

옹중이 : 작고 이쁜 사람

꼴꼴나다 : 형편없다

조선 강금  : 온갖일에 간섭하는 거.. 예) 조선 강금 다하네

한 파내기 : 한 판덩어리, 아주 큰 덩어리, 예) 한파내기 싸봤네

14살 도치랑 처녀가  17살 거배미 총각에게 시집갔다..

아마, 가난한 집에서  입하나 줄일려고 얼릉 시집보낸 의심이 간다..

거배미에서 지지리 고생하다 대처로 나가 아들만 5형제를 내리 낳고 무탈하게 키웠으니 일단 자식농사는 성공한 셈이다..

도치랑 여인은 아침 이불 속에서 어린 아들에게 꼭 가르치는 것이 있다..

본적은?  " 00군 00면 00리 529번지"

주소는? 할아버지 함자는??

그 문답속의 동네가 거배미이다..

거배미?? 

상석에는 한자로 거야촌(巨夜村)라고 표시했는데, 배미를 밤 야자로 이두식 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배미는 논배미의 배미가 아닐까??

처음 이 동네를 방문했을 때 반달지기 논배미가 다락논처럼 언덕을 따라 이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아마 다락논배미가 많다는 의미로 거배미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동네를 방문한 목적은 성묘를 하기 위해서이다..

문중 재실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

할아버지 묘소가 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후 해방직후 가족들이 대처로 떠났기에 여기에 계신 것이다..

 

인사올리고..

 

고조할아버지께도 인사올리고..

 

장손에게 남겨진 몇백평의 밭뙈기들..

이제는 대신 농사 질 사람이 없단다..

 

성묘를 마치고..도치랑으로 간다..

55년전에 구경갔던 용문산기도원부터 들린다..

 

1960년대 나장로의 용문산 부흥회는 유명했다..

그때 외가집에 왔다가 용문산기도원 구경을 간 적이 잇엇다.

사택의 최신 설비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은행잎을 밟으며 걸어가 이곳 저곳을 살피지만, 55년전 장소는 찾지 못하겠다.

 

나장로..그의 이름이 나운몽이고 목사가 되엇다는 사실은 이제서야 알았다..

혹시 기념관이라도 문을 열었으면, 추억의 장소를 찾을 수 잇을터인데..오늘은 닫혔다..

 

오랜 세월동안 이 기도원은 엄청 발전했나보다..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그 출발은 이렇게 초라한 초가집에서 시작되었다는..

구한말, 일제 시대 암담한 시절에는 동학의 최제우, 원불교의 소태산, 증산도의 강증산, 불교계의 경허, 만공, 한암 등 고승 도인이 은하수처럼 즐비하게 나타났는데..

이제 먹고 살만한 시절이 되니, 도인이 나타낫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

 

지나가는 사람 몇에게

"혹시 50년전에 ..."하고 물으니 모두 손을 내젓고 사라진다..ㅎ

하긴 그 사람들 나이가 50이 안되었는지도 모르지..ㅎㅎ

 

도치랑 마을로 돌아와 추억에 잠기며 돌아보는데, 사과가 붉게 주렁 주렁 익어간다..

그 예전엔 척박하던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과수, 특수작물 농사로 농촌도 살만해진 느낌이 난다..

 

우리의 방문을 축하하듯 핑크 장미도 피었다..

 

골목을 돌며 수소문하다가 연락이 끊겼던 사촌과 연락되었다..

 

도치랑 사과를 한상자 사면서 맛을 보니, 시원하고 달콤하다..

추억을 복원하는 것이 고인을 추모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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