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유채밭 끝에서 청룡산 숲길이 시작된다.

 

완만한 오르막의 오솔길..아무도 없는 완벽한 거리두기 코스..ㅎ

원래는 청룡산 정상에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생각도 잇었는데,

걸어오다보니 동네 개도 왕왕거리고, 소똥냄새도 다시 맡기 싫고 해서 한용운 생가까지 내처 걷기로 했다..

 

내포문화숲길이 국가보조를 많이 받나보다..

계단 조성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나처럼 홀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나 보다..

 

바지와 신발을 노랗게 물들이는 주범은??

바로~~~오

송화가루...

 

조망이 없는 숲길을 걷다가 드디어 전망대를 만났다..

시간은 이르지만, 더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점심요기를 하면서 풍광을 즐긴다..

 

좌측에 홍성방조제..우측 바다 가운데가 남당리 앞 죽도..그뒤로 안면도가 길게..

 

죽도가 궁금하시다고라??

https://blog.daum.net/servan/6351264

 

 

이 산속에 누가 이리 공든탑을 세웠나?

무슨 한이 그리 많아 돌마다 담아 쌓아놓았나?? 

 

정상석은 없고 정상지만..높이 236m

 

본격적으로 계단공사중..

 

그런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난다..

임도공사를 하면서 아직 연계통행로 공사가 미완성이다..

 

벼랑끝으로 조심 조심 지난다..

다행히 길은 계속 이어진다..

 

산속에서 만난 석관묘..

요즘 봉분이 멧돼지 등 습격에 허물어 지는데, 대안으로 이런 석관묘도 괜찮을 것 같다..

 

3.5Km의 숲길이 끝나고 이제 1.2KM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한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문선시에 익숙할 스님이 한글시를 멋들어지게 쓴다는 반전의 묘미..

 

그는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나 강원도 설악산 오세암, 백담사를 거쳐 건봉사에서 수행을 한다..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자유로이 날았다..

 

그는 3.1독립선언시 33인으로 참여했고, 독립선언서 말미의 공약삼장을 집필했다..

그리고 옥에 갇혔다.

그의 제자 춘성이 절 논을 팔아 옥바라지하다가 만해에게 혼나고 내쫓겼다는 말이 있다.

 

옥중감회

 

一念但覺淨無塵      
일념단각정무진
鐵窓明月自生新        
철창명월자생신
憂樂本空唯心在        
우락본공유심재
釋迦原來尋常人        
석가원래심상인


한생각으로 깨치면 티끌 없이 깨끗하나니
철창 사이로 비치는 명월도 스스로 새로워진다네
근심과 즐거움이 본래 공이요 오직 마음뿐이니
석가도 원래는 예사 사람이었다오

 

 

한용운 생가에서 김좌진 생가로 길은 이어진다..

 

아직 5km를 더가야 하는데, 주로 아스팔트를 걷는 코스라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다시 돌아와 만해기념관을 관람한다..

만해의 아버지는 홍주 관아의 아전이었는데, 어려서 어린 한용운에게 위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 어린 용운의 기상을 키워주었다.

동학혁명당시에는 홍주성 소속으로 동학군을 진압하는 일을 하다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자 한용운은 오대산 오세암으로 출가한다. 백담사를 거쳐 건봉사에서 당시 고승 만화스님을 만나 만해라는 법호를 받는다.

그는 오세암에서 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雪裏桃花片片飛

설리도화편편비

 

장부 이르는 곳마다 고향이거늘

그 누가 오랫동안 객수에 젖었던가

한 소리 큰 할에 삼천세계를 타파하니

눈 속에 복사꽃이 편편히 날리는구나

 

만해는 독립운동가, 시인, 불교혁신가로만 알려져있지, 그의 구도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오세암에서 당나라 동안 상찰 선사가 지은 십현담을  매월 김시습이 주해한 서적을 읽고,  숙고하여 

십현담주해집을 지었다..

 

내용이 궁금한 분은 여기를 보시요..

https://kydong77.tistory.com/17953

 

그는 만년에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살다가 광복 1년전에 사망했다.

https://blog.daum.net/servan/6350650 참조

 

****

한용운 생가 주차장에서 결성택시를 호출하니, 처음에는 30분 걸리다더니, 혼자냐고 묻더니 10분만에 왔다.

노인 2분을 태우고 합승시켜서 차량주차장소로 간다..

요금 7천원...

 

거기서 차를 몰고 4코스 종점 김좌진 생가로 갔다..

그는 서인 김상용(병자호란때 강화성에서 김장생의 손자 김익겸 등과 함께 순사)의 후손으로, 재산이 많은 집안에서 여유있게 자랐다.

그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해 16세 나이로 가노를 해방하고 전답을 무상 분배해준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한다.

1906년 홍성의병이 거병하여 홍주성 일본군을 공격하여 성을 탈환한 소식을 그도 들엇을 것이다.

그 의병에 그의 집안 사람도 참여하였다..

 

생가가 부잣집답게 닐리리 기와집이다..

집안 마굿간에 백마 모형도 잇다.

10대때 부터 말을 타고 무예를 익혔을 것 같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고 군대가 해산 되자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선다.

1920년 10월 21일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거 섬멸한다..

그당시 민족의 우상같은 존재였다..

 

1930년 1월 24일 공산당원에게 암살 당한다..

이일은 훗날 아들 김두환이 우익의 기동대로 나서는 인연이 된다..

 

장군의 이웃사촌도 열심히 활동한다..ㅎㅎ

물론 그의 정신을 계승하겠지..

 

<오늘 걷기> 결성행정복지센터 - 결성관아 - 결성향교 - 청룡산 숲길 - 한용운 생가 약 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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