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곡- 흥덕왕릉을 거쳐 옥산서원을 오면서 생각하니,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경주 손씨다.

신라 6성의 하나가 경주 손씨인데, 경주 손씨의 터전은 무량대수촌으로 현재 건천 지역이다.

흥덕왕 시절 경주 손씨 중시조 손순이 취산의 들판에서 석종을 얻은 사연으로 흥덕왕으로부터 효자로 표창을 받고 하사 받은 집이 "현곡(문효사)"에 있다. (https://blog.daum.net/servan/6352150  )

 

한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주 양동마을 내 경주 손씨 종가 서백당에서 조선 세조 때 공신 손소의 딸이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이 옥산서원의 주인공인 회재 이언적이다..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옥산서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들어간다..

경주 양동마을을 포함하면, 회재 이언적의 관련지 2곳이 유네스코 셰계유산에 들어가니 대단하다고 하겠다..

 

일단 시골밥상에서 정갈한 점심을 먹고..

 

슬슬 자계천을 따라 서원으로 걸어간다..

 

하마비 옆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옥산서원이다..

 

회재 이언적은 중종 - 명종 때 문신으로 그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주었다.

옥산서원은 그의 사후 후학들이 1572년(선조 5년)에 창건하엿고, 1574년(선조 7년) 서원이름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역락문..

옆에 설명문이 가필되었다.

聞風卽回 望道而來 不亦樂哉 邦之英材

風俗을 듣고 곧 돌아서서, 도를 바라보고 왔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나라의 영재들이여!

 

무변루 누각 아래를 지나면 구인당의 옥산서원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옥산서원..이 글씨는 1839년 화재로 불타자, 헌종이 추사로 하여금 쓰게해서 보낸 것이다..

추사는 54세에 이 글씨를 쓰고 1년뒤 제주도로 귀양간다..

 

무변루..이름은 노수신이 짓고, 한석봉의 글씨다..

 

구인당..

이 글씨도 한석봉의 글씨다..

구인당은 강의와 토론이 벌어지는 강당으로 중심건물이다..

현판에 가필된 글씨를 보면,

心德何損 放而曰遠 一念知反 卽此是本

마음의 덕이 어찌 줄어들겠는가? 

방치하고서는 왈, 멀다 한다. 

한 번 생각하여 돌이킬 줄 알면 곧 이것이 바로 근본이다.

 

구인당 양측 해립재와 양진재는 교수와 유사의 거주공간..

해립재(偕立齋)

敬直義方 內外交相 惟操不忘 天德之光

안으로 敬하고 밖으로 義하여, 안과 밖이 서로 도와 굳게 잡아 잊지 않아야 천덕(天德)이 빛난다

 

양진재(兩進齋)

擇善惟明 反身惟誠 孰重孰輕 聖賢同行

선을 택함은 밝아야 하고 자신을 반성함은 성실하게 하여야 하니,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가벼운가?

성인과 현인이 함께 한다.

 

회재 이언적의 신도비는 호남의 기대승이 글을 짓고, 글씨는 이산해가 썼다.

동서 분당 전이라 영호충청의 선비들이 함께 모여 이를 추진했으니,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마당 웅덩이에 올챙이가 바글 바글..

이런 소박한 모습이 조선 후기로 가면 황소개구리로 변했다는..ㅎ

 

회재는 자계천에 독락당을 짓고 주변에 4산 오대의 이름을 붙였다..

사산은 도덕산·무학산·화개산·자옥산을 말하고, 오대는 관어대·탁영대·영귀대, 징심대, 세심대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옥산서원 이름도 자옥산에서 따온 것이다..

서원 옆 세심대에 아이들이 물놀이로 즐겁다..

 

세심대 옆 독탕..

여름에 동네 노인이 주변에 안경, 물, 책을 놓아두고 시원한 물놀이를 즐긴단다..ㅎ

이름을 독락탕이라고 하면 되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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