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의 마지막 일정...아이치현 나고야 성으로 간다..
오쿠히다로부터 3시간 거리..지루함을 달래 준다고 가이드는 욘사마 이야기를 한다..
일본에는 8만이 넘는 신이 존재하는데 이제는 욘사마도 신의 지위에 올라갈듯하다는 거..
처음 NHK가 가을 연가를 수입할 때는 헐값에 들여왔다..
첫방영은 욘사마 등 출연진의 대사를 더빙하여 방영하였는데, 중년 주부들의 입소문으로 인기가 높아져 갔다..
가부장적인 일본 남자에게 하녀처럼 "하이"를 연발하며 수발해야 했던 중년 주부(그래서 일본에는 황혼이혼이 많다)에게 연인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욘사마에게 빠지기 시작한다..
목도리 두르고 뿔테안경 쓴 욘사마는 동화 속 왕자처럼 다가온 것이다..
첫방영이 끝나자, 방송국에 여론이 쇄도한다..
"이런 드라마를 어찌 광고도 없이 방영해서 초반부를 놓치게 했느냐, 다시 틀어달라, 욘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
두번째 방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더빙없이 자막 방송으로 방영된다..
방영이 종료되자, 방송국에 여론이 쇄도한다..
"지방은 사람이 아니냐 어찌 동경만 틀어 주느냐?"
하여 세번째 방영은 전국에 방영하면서 아예 저녁 황금시간에 방영한다"
그 시간에 일본 남자들은여자들이 드라마 보는 동안 동네 선술집에 모여 서로 넋두리 했단다.
세번째 방영이 종료되자, 다시 여론이 쇄도 하였다..
"욘사마를 직접 보고싶다"
그래서 욘사마를 일본으로 초청했다..."목도리 두르고 뿔테안경 쓰고 오라고"는 조건으로..
욘사마가 공항에 도착하는 날 전국 각지에서 7000명의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욘사마를 보는 순간, 인파가 밀리는 바람에 한 여자가 넘어져 부상을 당해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입원한 병원에 욘사마가 나타나 그 여자의 손을 말없이 잡아 주고 위로의 뜻을 표하고는 병원비까지 전액 지불하고 갔다..
일본 여자들이 감동먹었다..
욘사마는 그녀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이후로 그의 인기는 그칠 줄 몰랐다..
어느 집에 화재가 났는데, 한 여자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며 "돈으로 살 수없는 귀중품" 한가지만 챙겨 나왔단다..
그 귀중품이란 것이 욘사마가 싸인한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또한 드라마는 DVD로도 출시 되었는데, 그중 압권은 여주인공 최지우의 대사만 뺀 것도 잇단다..
이유는?
최지우의 대사부분은 시청하는 자신이 직접하는 것이다..(몇번 봐서 대사를 거의 외우는 여자들이겠지)
한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욘사마가 결혼하는 날 일본 여자 200여명이 식장 밖에서 도열하고 있엇다는..
이어 대장금이 일본에 방영되었다..
이번에 일본 남자(이영애), 일본 딸래미(지진희)들이 흠뻑 빠졌다..
그러자 한글과 한국문화을 배우는 바람이 불고, 한국여행이 급증했다..
촬영장소 남이섬은 대박이 났다..
일본의 경제학자가 발표하기를 욘사마의 경제적 가치는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나고야에 도착하여 우선 점심부터 먹으로 간다..
태합본점..
태합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관직명이 아닌가?
일본인들 도색공사하는 것을 살펴보니, 도색을 정확히 하려고 바닥에 일일이 종이를 붙이고 도색후 떼는 등 철저히 한다..
나고야 성에 도착했다..
나고야 성의 옛 성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천하 패권을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기요스 성으로 옮기고, 나고야 성을 폐성 되었다가
히데요시 사망이후 벌어진 세기가하라 전투의 승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히데요시 잔존 세력에 대한 방비책으로 이 성을 지었다..
그러니 이성은 도쿠카와의 성이다..
긴사치..천수각 치미를 장식하던 조각
얼굴은 호랑이와 비슷하고 등에는 가시가 돋친 상상의 물고기인 사치호코를 형상화.
임진왜란 때 왜수군은 거북선의 용머리를 보고 사치호코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기절초풍했단다..
원래 축성 때 84% 순금을 사용하였다는데 태평양 전쟁시 공습으로 무너진 성과 함께 사라졌다.
1959년 성의 재건시에 황금 약 89kg을 사용하여 암수 한쌍을 복원했다.
이들의 성 복원은 겉만 옛모양이고 내부는 현대식 전시관 모양이다..
엘리베이터 타고 5층까지 올라가 내려가면서 구경하는 방식이다..
위 왼쪽 오다 노부나가, 위 오른쪽 토요토미 히데요시, 아래 도쿠카와 이에야스..
3사람의 성격을 알려주는 뻐꾸기 이야기가 있다..
만일 울지 않는 뻐꾸기가 있다면 어찌 하겠는가?
오다는 울지않는 새는 죽여버린다..
히데요시는 무슨 수단을 쓰던 울게 한다..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조총..
일본에서는 데뽀(鐵砲)라고 한다..
포르투갈 상선에서 구입한 조총을 보고 오다 노부나가는 군대의 혁신을 생각했다..
3천의 조총병을 1천명씩 3열로 세우고 순차적으로 총을 쏘개하면 연속 발사가 가능하다..
조총은 활에 비해 유효사거리가 짧다..
하지만 장점이 많다.
1) 활보다 훈련이 쉽다..
2) 적이 가까이 왔을 때 연속 발사가 가능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특히 기마부대를 제압하는데,,
물론, 기병이 50미터 이내로 접근할 때 까지 공포심을 누르고 명령을 기다리는 담력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병자호란때 우리나라는 조총병으로 청의 기병을 제압하려햇다..하지만 훈련 부족으로 청의 기병이 50미터 이내로 접근하기전에 총을
쏘고 우왕좌왕하다가 청기병에게 당했다..그것이 쌍령전투다..
현재도 무슨 제도, 무기를 도입하지만, 실제 그 운용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는 다게다 신겐의 기마부대를 3천 조총병으로 제압하고 천하의 강자가 되었다..
그당시 일본은 포르투갈보다 더 우수한 조총을 생산하였고, 조총 전술도 혁신적이었다..
무대뽀라는 말은 조총없이 전투에 나가는 거..
요즘 아무 대책없이 저질르고 보는..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쇼군의 결제처가 참 소박하다..
나고야 성은 오사카,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에 꼽히는데, 이제 다 본 셈이다..
혼마루 어전을 구경했다..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쌀을 찧어 놓고, 풍신수길이 반죽해논 떡을 도쿠카와가 먹었다고 표현한다..
대하 소설 대망에 등장하는 도쿠카와의 이미지는 인내와 기다림의 달인이다..
결국 그는 기다림 끝에 60이 넘은 나이에 대권을 차지했다..
닛코의 도쇼궁에 있다는 그의 유훈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 없다.
부자유를 친구로 삼으면 족하다.
욕심이 생기면 궁핍했을 때를 걱정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원이요, 분노는 적이다.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에게 돌아갈 것이다,
스스로를 탓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모자람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성 출구 쪽에 사람들이 서서 구경을 하고 있어 들여다 보니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뭐라고 고리를 지르자 구경꾼도 따라서 같이 소리를 지르고 함께 우르르 어디론가 간다..
일본에선 아직도 히데요시의 위상이 대단한가 보다..
그의 정신상태를 알려면 최근에 방영된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제3회를 보면 좋을 것 같다..
나고야 시내 사카에 거리로 가서 나고야 TV 타워를 지나 오아시스 21 이라는 물의 우주선을 보러간다..
지붕을 수조로 만들어 이색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오아시스 켐페인을 펼쳤다는 일본..
오..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안녕하세요)
아..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시..시쯔레이시마스 (실례합니다)
스..스미마셍 (미안합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이런 연습으로 친절해진 것 같다..
물론 히데요시 추종 세력인 극우파 정치인들으 제외하곤..
새와 소녀..
소녀는 어깨의 위의 새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의 위안부 소녀의 어깨에도 새가 앉아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아츠다 신궁에 갔다..
일본 패키지 여행 중에 한번은 끼어 있는 신사방문..
일본은 신도와 불교 신봉이 대다수인 나라..
일본에는 3가지 없다고 한다..
공짜, 십자가, 크락숀..
우리나라는 도시의 밤을 장식하는 수많은 붉은 십자가가 인상적이라고 누군가 말했지..
일본은 십자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 신도는 전통의 샤머니즘을 총정리한 느낌..
그래서 일본에 8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백제에서 건너가 천자문을 전해 준 왕인박사를 포함해 수많은 고수들을 신으로 모시고 잇다..
이제 욘사마 신사도 생길 지도 모른다..
일단 신사 입구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한개씩 사서 입에 물고 구경하기로 했다..
매점 안의 글씨가 재미있다..
"정갈한 찻집에 찾아오신 여러분이 행복의 신입니다.."
우리는 졸지에 행복의 신이 되었다..
이 신궁에는 천왕의 3종신기인 거울, 곡옥, 신검 중 신검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공개 된 적은 없다..
전설에 의하면,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인신공양를 받는 8두사를 죽이고 그 뱃속에 잇던 검을 발견했는데, 그 이름을 天叢雲劍(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이라 짓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천조대신)에게 헌상한 것이라 한다.
그뒤 12대 케이코 천황의 태자 일본 무존(왜건명, 야마토 다케루노 미고토)이 동정(東征)시에 이세(伊勢) 신궁에서 숙모 왜희(倭姬)로 부터 신궁으로 봉안되었던 신검을 하사받아서 에비스족 평정에 공을 세웠다.
그때 신검을 뽑아 주위 풀을 베고 맞불을 놓아 궁지에서 벗어나 적을 남김없이 베어 죽였다.
그래서 신검은 '구사나기노츠루기(草薙劍)'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가 죽은 뒤 부인이 아츠타 땅에 신궁을 건립하고 신검을 봉안햇다. 이것이 아츠타(熱田) 신궁의 기원이다..
저 안 어디에 신검이 보관되어잇을까?
일본에서 신궁이란 천황과 관련된 신사를 말한다..
아츠다 신궁은 이세신궁, 메이지신궁과 함께 3대 신궁으로 꼽힌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아이가 이쁘다..
성황당에서나 보던 금줄이 여기서는 칙사 대접이다..
우리나라도 전통신앙과 불교의 대결이 있었다..
신라 법흥왕 때 이차돈 순교이후 불교가 정통이 되었고 전통신앙은 물러나 절의 한켠에 칠성당, 산신각에 안치되었다..
일본도 승준천황 때 신도파 모노노배씨와 불교파 소가씨가 전투를 벌여 소가씨가 승리함으로 불교가 세력을 얻었으나
이들은 신불습합 정책으로 신도와 불교를 아울러 믿는 형국이 되었다..
보물관 입구에 전시된 대형 칼..
신검 복제품인가 했더니..
무로마치시대의 칼 노타치(野太刀)로 2미터 20센치의 장검인데, 장식용인거 같다..
그렇게 신사구경을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열망했던 동양평화에 대하여..
3사람이 개심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아베가 사과하고..
시진핑이 겸손하고..
또하나는??
마지막으로 나고야 공항에서 라멘을 먹는 것으로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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