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1년 중국 서안 인근 법문사 진신사리탑이 칼로 자른듯 절반이 무너졌다.

 

2. 1987년 진신사리탑의 복원공사 중 지하보궁이 발견되었고, 거기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손가락뼈(불지) 사리와 당나라의 보물을 발굴하였다.

이 불지사리는 2005년 우리나라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었다.

 

 

3. 법문사 사리 이야기는 자현스님의 붓다로드 유튜브를 보다가 알게되었다.

출처가 확실한 부처님 진신사리 1순위라는 이야기..

그래서 검색하다가 법문사 불지사리 발굴 이야기를 쓴 '법문사의 비밀'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책은 이미 절판되어, 중고책 싸이트를 통해 구입하였다.

 

4. 법문사의 불지사리의 재출현은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나노적 희소성을 가지므로 불가사의 내지 기적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1) 기원전 7세기 북인도 싯다르타 왕자의 출가와 6년만의 성도, 교화 그리고 열반, 

    쿠시나가라 열반후 수습된 사리는 8등분되어 8왕국에 사리탑이 세워진다.

 

2) 기원전 3세기경 인도 아소카왕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개심한다.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유적지를 방문하여 참배하고 사리탑을 헐어 이를 다시 8만 4000개로 나누어 전국에     사리탑을 탑을 세우고 외국 포교도 개시한다.

3) 기원전 240년 석리방 등 18명이 불지사리를 모시고 중국으로 입국한다.
   - 포교의 시절인연이 성숙하지 않아 불지사리를 서안 인근 주원 미양 땅에 매장한다.

4) 안식국 태자 출신 스님 안세고(약 148년-180년)가 중국에 입국하여 사리를 재발견한다. 
   서안 인근 주원 미양에 4층 목탑을 세우고 아육왕사(현 법문사)를 건립한다.

 

5) 당나라에서 법문사를 왕실사찰로 관리하면서 30년마다 불지사리 봉영행사를 한다. 

   - 당고종, 즉천무후, 헌종, 의종 등이 성대하게 치렀다. 

 

6) 845년 당 무종때 불교말살정책인 회창의 법난이 시작되면서 법문사 사리를 없애라는 명령이 잇었으나  모조품만 파괴되고, 불지사리는 생존한다.

- 무종은  도교에 빠져 846년 도사의 단약을 복용하다 급사하면서 회창의 법난은 중지된다. 

7) 당 말기 희종 때 마지막 봉영행사를 끝으로 불지사리의 존재는 잊혀진다.

 

8) 1568년 8.14. 대지진으로 법문사 목탑이 파괴되자  1579년 12층 전탑으로 재건축을 시작한다.
   - 1층 건축후 자금난으로 10년간 중단,
   - 순례온 서촉 출신 백발거사가 크게 발심하여 어깨죽지를 관통하여 쇠막대를 꽂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모금운동을 하       여 공사가 재개된다.

 

법문사 세워지고 머물다 무너지니 
텅빈 공속에 홀연히 미친 승려 나타났네 
백자 철심으로 어깨를 뚫고 
여래와 더불어 기개를 더하려하네 

<법문사 정전 서쪽 비석 글>

 

   - 결국 1609년 30년만에 13층탑으로 완공

 

 

9)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법문사 탑을 파괴하려고 하였다.

   그때 주지 양경법사가 소신공양을 단행하자, 이 광경에 충격을 먹은 홍위병이 물러감으로써 사리탑이 보존되엇다.

 

<자료사진, 1963년 베트남 승려의 소신공양 장면 >

5. 1987년 불지사리의 발굴을 계기로 현재 법문사는 중국 최고등급의 문화관광지가 되었다. 

 

1) 법문사 지하궁전 모습  : blog.naver.com/etien/80035356806

 

2) 새로 신축한 사리탑  

 

blog.naver.com/chang5675/221383582854 

 

blog.daum.net/mickeyeden/16155877?category=1829

 

드론으로 본 모습  :  youtu.be/Rk4wDPpC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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