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일등인충효(天下一等人忠孝)

세간양건사경독(世間兩件事耕讀)

 

천하 일등인은 충효를 하고,

세상에 중요한 두가지는 일하고 독서하는 것이다..

 

전에 홍성에 근무할 때 추사 고택에 가서 위 글씨가 양각된 현판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위 현판의 탁본을 선물받았는데, 보관하다가 표구를 하여 사무실에 걸었다.

 

그리고 인연이 되어 각종 추사 김정희에 대한 책을 섭렵하였다..

그런데, 위 글씨에 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위 글씨가 추사체의 진본인지 항상 궁금했다..

최근 지인 한분이 추사에 관한 수필을 썼는데, 그 분은 많은 전문가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위 표구 사진을 보내 주고, 전문가의 의견을 물었달라고 부탁했다.

그분이 예산고 교사로 추사체에 안목이 깊은 노재준씨에게 자문을 했단다..

자문결과, " 위 글씨는 추사체가 맞고, 원본(아래 사진)은 과천 추사박물관에 있다.

다만, 위 탁본의 좌측의 추사 김정희 글씨와 낙관은 진본이 아니다.."

즉, 누군가 추사체로 판각하면서 추사 김정희와 낙관을 임의로 첨가하여 완성시킨 것이란 말씀..

 

 

 

 

'쓰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리게  (0) 2023.02.07
인생불학(人生不學), 배우지 않으면  (0) 2023.02.04
관산청천(觀山聽泉)  (1) 2023.01.05
독좌관심(獨坐觀心)  (3) 2023.01.04
삼취악양(三醉樂陽), 악양에서 3번 취하다  (1) 2022.12.17

 

 

 

 

평소 추사의 글씨를 좋아하여  추사관련 책을 많이 사 읽고, 추사 유배길도 걸었다..

그런데 이 책 처럼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기존 평론가들이 부작난화(不作蘭花)로 해독하는 것을 저자는 부정난화(不正蘭花)라고 해독하면서 완전히 다른 해석을 시작한다..

부정난화라고 해독하려면 정난화가 있다는 것인데,

정난화는 남송 말기  사초思肖 정소남鄭所南이 노근란露根蘭을 그리며 남송에 대한 충정과 반원 정신을 표현함으로서 시작된 난화를 말한다.

이런 충절을 강조하는 난화는 성리학이 절대적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던 조선에 들어오면서 선비문예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정난화 대접을 받게 었단다

 

그런데, 정소남 이전의 난화 즉 굴원의 이소 등에 나타난 난의 상징은 "백성의 소리"였단다..

추사가 추구한 부정난화란 이런 전통적인 상징으로서 난화를 그림으로써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공평한 인재등용 등으로 개혁을 바라는 동지를 규합"할 목적으로 난화를 그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추사는 고증학적인 입장에서 성리학의 공리공론적 경향을 배격하고 공자가 원래 추구했던 현실 직시하는 실사구시의 유학을 난화를 통해서 표방했다 한다.  

 

난엽이 오른 쪽으로 꺽인 그림은 서풍이 부는 것인데, 서풍은 가을 바람이고 역경, 고난을 뜻하고, 왼쪽으로 꺽인 그림은 동풍이 부는 것인데, 동풍은 봄바람이고 순경, 미래상을 표현한다

 

문자향, 서권기란 "그림과 글씨의 조형에서 풍기는 느낌"이 아니라 "난화의 제화시나 문장 숨겨진 사의(寫意)를 읽어 내야" 가능하다..

기존의 학자들은 그런 학문적 깊이가 없어서 추사의 글씨를 오독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한다..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고전 공부의 깊이가 느껴지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다산이 귀양지에서 500권의 책을 저술할 때, 지적 학문적 수준에서 그와 필적할만한 추사가 그저 난을 환쟁이 수준으로 희롱이나 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아들 상우에게 한 말이 의미가 있다..

아들 상우가 제주도에 종이를 가득 보내자, 추사는 서너 장이면 될 것을 많이 보냈다며, 

“넌 아직 난경취미를 터득지 못했다(汝尙不解蘭境趣味)”며 “문자향서권기를 가슴에 담아 그리면 많이 그릴 필요가 없으니 종이는 더 이상 보내지 말라”고 질책했다.

 

이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라.

단순한 난 그림이라면 많이 반복해서 그려야 발전할터이지만, 추사처럼 글자 속에 의미를 담으려면 난화를  많이 그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문자향, 서권기란 고전에 달통하고 자유자재로 변용할 수있어야 깊이 있는 제화시를 쓸 수 있고, 그런 연후에야 추사스타일의 난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요즘 사군자 그림에 깊이 없는 제화시를 쓰고, 문인화라고 칭하며 "문자향, 서권기를 풍긴다"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의 결과라는 결론이 나온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