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시에서 따온‘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를 쓴 소암의 작품. ‘이 가운데 참뜻이 있다’는 뜻이다. 예술의전당 제공


 

  • [리뷰]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췄다”
  • 현중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 김양동·계명대교수(서예·전각)
    입력 : 2007.06.19 00:28 / 수정 : 2007.06.19 00:28
    • 필가묵무(筆歌墨舞),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 경지. 소암 현중화(1907-1997)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18일 폐막) 감상하고 느낀 한마디 소감이다.

      제주도 서귀포에는 일본에서 귀국하여 붓 한자루로 고결한 생애를 마친 묵선(墨仙) 한 분이 계셨다. 길고 긴 흰 수염, 펄럭이는 두루마기 차림의 훤칠한 키, 그 모습에서 이미 탈속의 풍자를 느끼게 했던 분이 바로 소암 선생이다. 선생은 약관에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정경학과 전문부를 마친 엘리트 서예가였다. 재일 한국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소암은 일경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한 피신의 수단으로 일본의 서도대가 마츠모토 호우수이(松本芳翠)의 문하생이 된다. 이것이 결국 그의 예술적 자질을 자극한 계기가 되어 그는 글씨에 대한 흥미 수준을 넘어 본질적 접근과 탐구를 하게 되었다. 육조(六朝) 서체를 비롯한 각체의 고전을 두루 섭렵하고 1955년 49세 때 귀국한 소암은 51세(1957)부터 국전에서 활동을 시작, 당시 한국 서단의 대부격인 손재형으로부터 ‘서단의 이채로운 존재’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는 90평생 소암 예술의 성취 부분 중에서 특히 만년의 미발표작 100여 점을 중점적으로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종횡무진한 소암 예술의 진면목과 예술적 가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암의 서예세계는 고전을 철저히 학습 수용하고 재해석하여 걸러낸 다음, 유, 석, 도(儒釋道) 삼가(三家)사상을 혼융한 내용을 개성적인 표현으로 자재롭게 구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행초서에서 드러나고 있는 질탕하고 표일한 흐름, 미친 듯 분방한 봉망에서 터지는 격정과 묵기 임리(淋?)한 획질, 그 율조와 흥취는 만리를 달려온 진애를 한꺼번에 씻어 내는 소나기의 시원한 바람같은 느낌을 준다.

      그 중에서 백미는 취필(醉筆)이다. 코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았다던 소암, 그런 풍류와 낭만이 있었기에 취시선(醉是僊·취하면 그것이 곧 신선이다)과 같은 큰 글씨의 광초(狂草) 벽서(壁書)를 남겼다. 취시선은 어느 요정에서 흥건히 취한 소암이 고은 베로 도배를 한 벽에 휘갈겨 쓴 초서로 글자 한자의 크기가 사람 키와 같다. 취시선 앞에선 서예를 모르는 사람도 탄성을 토하며 서예가 바로 이런 멋이었구나 하고 금방 붓을 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이다.

      소암은 현실의 명리에 대한 체념을 글씨로써 초탈하여 달관의 경지에 오른 진정한 필묵의 자유인이었다. 세속으로부터 자기해방을 하고자 했던 대서예가 소암의 글씨에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90평생 ‘먹고 잠자고 쓰고’ 했던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취묵신선이었던 소암선생, 그는 이 시대 필묵으로써 자아를 완성했던 보기 드문 거인이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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