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유거( 仙嶠幽居)..
강릉 선교장에는 조선 말기의 서예가 소남 小南 이희수 선생이 쓴 ‘선교유거 仙嶠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뜻이다.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
1836년생으로 1909년 별세했다. 향년 73세.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에 살면서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에게서 글씨를 배웠다. 강원도 생활은 강릉에서 시작했으나 그 후 송정, 북평, 삼척으로 옮겨 후학들을 지도했다.
소남(少南)이라는 이희수의 아호는 스승인 눌인 조광진이 붙여준 것으로 서성으로 일컬어지는 진나라 왕희지의 자인 일소(逸少)에서 소(少)를, 당나라의 대표적인 서화가인 우세남(虞世南)에게서 남(南)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남의 필맥은 백하(白下) 윤순(尹淳)으로 시작해 원교(圓喬) 이광사(李匡師)를 거쳐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을 이어받았으며 여기에 격조 높은 왕희지체와 우세남의 글씨를 섭렵함으로써 사발체(四八體)라는 특유의 독창적인 서법을 개발 구사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하면 사발체란 무엇일까. 이는 다섯 손가락이나 필봉에 전혀 힘을 주지 않고 팔이 어깨에서 탈골된 것처럼 운필을 함으로써 아무런 제약이나 막힌 곳 없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시원스러운 느낌을 주는 필법이라고 한다. 따라서 서예를 모르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언뜻 치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안목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기운생동의 기풍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소남의 작품은 무낙관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이는 그의 성격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데 남에게 그림이나 글씨를 주는데 인색치는 않았으나 도장 찍기를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림을 받아가며 상대방이 굳이 도장 찍어줄 것을 간청하면 "이 사람아 원래 낙관이라는 것은 그림 그리고 빈자리가 허술해서 찍는거야. 그림에 무슨 도장이 필요해" 하며 물리쳤다고 한다.
광풍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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