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공원 입구)

 

추석 지난 첫주말에 하는 모임이 있다..
좀 한가하고 여유를 즐기기 좋은 때다..

낮엔 운동도 하고 저녁에 식음가무도하고 양지콘도에서 1박한후 이천 설봉공원에 들럿다..

 

세계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는 이곳에 있는 도자기전시관에 들럿다..

출입문 손잡이도 청자다..

 

(다구)

 

진열된 각종 도지기 중에 다구세트가 눈에 탁 들어온다..
가격을 물어보니 27만원이란다..
역시 내 눈도 한몫하는구나!

 

여직원이 친절하게 다구 고르는 요령을 설명해준다..
1. 잔 밑받침이 긴 것을 골르라 - 입술 닿는 부분을 만지지 않고 밑받침을 잡고 잔을 닦을 수 있단다..
2. 다관(주전자) 뚜껑 중 다관에 삽입되는 부분과 그와 물리는 다관의 입구는 유액을 바르지 않은 것이 좋단다..
3. 실제 다관에서 물이 잘 따라지는 것.. 

 

(8800만원짜리 청자)

 

말 나온 김에 내가 이 전시관에서 제일 비싼 자기는 무었이냐고 물었다..

"8800만원짜리 청자"

왜 비싸냐고 물았더니 청자표면이 무균열이란다..
구현하기 어려운 고급 기술이라서..

 

 


 

청자철사매화문호라고 해야하나..

위 청자의 제작자는 혁산..

 

동국요(東國窯)의 혁산(赫山) 방철주(方徹柱)는  오로지 고려청자의 비색(翡色) 재현을 위해 혼신을 바쳐 온 우리시대의 소중한 작가이다.
1990년이래 청자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디자인과 색상을 지닌 무균열 순수청자 재현에 전념하여왔다.

그의 작품 ‘지구무늬 항아리(Global Jar)’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 전시(등록번호 2043527)된다.

1998년 제작된 ‘지구무늬 항아리’ 표면에는 물방울 모양이 점점 확대되거나 축소되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듯한 현대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다. 스미소니언 측은 고려청자의 고전적인 아름다운 비색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달항아리 백자)

 

잠벗에게 맘에 드는 것을 골르라니 문양이 없는 청자를 고르는데..

난 달같은 백자가 좋더라..가격 50만원..







이 전시관엔 다양한 자기가 많았다..

자기 삼겹살판도 있었고..부엉이 자기 촛대도 잇고..

문양도 다양하다..

연꽃..잉어..대나무..
 

 




일요작가회가 이곳에서 그림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천막형 공연장 공간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따라주는 차를 들고 그리는 그림을 구경하노라니 파리의 몽마르뜨가 따로 없네...


 

(시비-구상)

 

워낙 넓은 공간이라 시간도 부족하여 내년 모임 때 다시 와서 호수도 돌고 산림욕장도 걷고..국궁도 쏘기로 하고.. 돌아서서 인근에 다도체험장 표지를 보고 갓더니 관리요원은 없고 화가들만 처마밑에 앉아 도시락 먹느라 바쁘다..

 

입구로 나오는데 시비가 서잇어 감상하며 내려온다..

그중 구상의 "오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잇다.

 

그래서 나는 죽고나서 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심수관의 방명록)

 

점심을 먹으러 쌀밥집에 갔다..

송월..

이천의 트레이드 마크인 쌀밥을 이천의 도자기에 담아 먹는다..

멋진 매치..

더구나, 반찬이 전주인심 못지 않으니 이천에 오래 살면 살찌겟다..

 

이 가게 입구에 유명인의 방문 기념 서명이 붙어 잇는데, 그중 심수관의 싸인이 인상적이다..

 

 뭇 산 하

넘어지며 달려온

400년

조선도공 손 14대 심수관

 

그는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 심당길의 14세손이란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조명연합군의 방어하던 남원성이 왜군에게 무너진다..일만명이 몰살당하여 남원에 "만인의총"이 생기는 사건.. 

그 때 남원의 도공 심당길이 왜병에 잡혀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간다.

그는 끌려가면서 가져간 조선의 백토와 유약으로 조선의 백자를 재현하여 사쓰마 도예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심씨의 성을 고집하였고, 조선에서 불씨를 가져오지 못한 것을 항시 애석해하며 후손들에게 고향의 불씨를 가져오라는 유언을 남겼다한다.

그는 끌려갈 당시에도 배 밑창에 언문책을 숨겨와 자손을 가르쳤고, 그 이후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한글 교본으로 대대손손 한글을 익혀왔단다.
그 자손이 이어져 12대손인 심수관은 18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2m에 달하는 대형 도자기 ‘금수대화병’을 출품해 유럽인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이후 가문의 세습명으로 삼게 되었다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바 료타로의 "고향을 어찌 잊으리’ 라는 역사소설로 널리 알려진다.


 

그의 이름을 도자기 고장인 여기 이천에서 본다..

선조의 고향 남원의 도자기는 쇠퇴하였으나  이천에서 다소 위안을 받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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