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사랑을 강조한다면, 불교에서는 ‘보시’를 중시한다. 보시란 ‘베푼다’는 뜻인데, 대승불교의 6바라밀 가운데 제일 첫 번째 항목에 들어간다. 6바라밀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순서이다. 수행의 마지막 목표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보시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도통하고 싶거든 보시부터 시작하라는 말이다.
보통 보시라고 하면 재물을 베푸는 재시(財施), 진리를 깨닫도록 해주는 법시(法施), 살생을 하지 않는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분화시켜 일곱 가지 보시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신시(身施)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몸을 움직여라. 자기 몸을 반듯하게 간수하는 것도 신시에 포함된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심시(心施).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 자기 마음이 편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셋째는 안시(眼施). 눈빛을 좋게 비추어라. 상대방을 사납게 노려보지 마라.
넷째는 안시(顔施). 사람을 대할 때 얼굴빛을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라.
다섯째는 방시(房施). 손님을 위해서 방을 잘 청소해라.
여섯째 좌시(座施). 어른이 오면 앉는 자리를 잘 정돈해라. 그래야 어른이 편안하게 앉는다.
일곱째 언시(言施). 말을 품위 있고 부드럽게 하라. 품위 있고 부드러운 말도 상대방에 대한 보시이다.
나이 지긋한 원로스님들이 말하는 불가의 에티켓이 바로 이 ‘칠시’이기도 하다.
칠시 가운데 필자가 가장 많이 걸리는 부분은 셋째의 안시(眼施)이다. 상대방을 쳐다볼 때 정면으로 노려보는 습관이 있다. 노려보는 습관의 이면에는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하는 호승지벽(好勝之癖)이 작동하는 탓이다. 몇 년 전 18년째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어느 노스님을 만났을 때, ‘안시’의 중요성에 대하여 단단히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도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그런 눈으로 상대방을 쳐다보아서야 되겠는가!’ 하는 질책이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막말’이 오가고 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다. ‘언시’ 좀 하였으면 좋겠다.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언시 아닌가!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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