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 역사문화관에 있는 대통령들의 글씨
우암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지인용..지혜, 어짐, 그리고 용기..
해위 윤보선 대통령의 애국일념 가열천추..애국의 한마음 천추에 및난다..
박정희 대통령..근검절약 국론통일..
1975년 정초에 썼다..
그해 1월 장모 8순잔치에서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로 시작되는 짝사랑을 불렀다.
그리고 2월 유신헌법 신임투표를 실시하여 73% 찬성으로 신임을 받았고, 그해 4월 월남이 패망했다..
그해 8월 거제 저도 청해대에서 시한수를 읊었다..
님과함께 놀던 곳에 나 홀로 찾아오니
우거진 숲속에서 매미만이 반겨하네
앉은자리 밟던자국 모래마다 밟던자국
저도섬 백사장에 체온마저 따스해라
파도소리 예와같네 짝을 잃은 저기러기
나와 함께 놀다가렴
촤규하 대통령의 청간정 글씨
嶽海相調古樓上(악해상조고루상) 설악과 동해가 상조하는 옛누각에 오르니
果是關東秀逸景(과시관동수일경) 과연 이곳이 관동의 빼어난 경치로다..
그런데, 한문 편액은 보통 우에서 좌로 쓰는데, 이 글은 우에서 좌로 쓰는 신식이다..
경신년(1980년) 여름 강원도 고성 청간정에 왔다..
서울의 봄이 끝나고 광주항쟁이 진압된 뒤인게다..
전두환대통령..
설후시지송백조 사난방견장부심(雪後始知松柏操 事難方見丈夫心)
눈이 내린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고, 큰일을 겪고 나서야 장부의 마음이 보인다)
그는 1988년 맥담사로 떠났다..백담사에 유배같은 운둔 생활을 할 때 한 밤중에도 일어나 벽을 치며 손 볼 사람을 생각했다던가..
저글씨는 경오년(1990년) 동지날에 측근 안총장에게 써 준 모양이다..
1990년 12.31. 백담사를 떠나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노태우 대통령
위충진명..충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1991년 3월 6일에 썼다..그해 4월 강경대군 사망사건이 터지고..남북한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쏘련이 붕괴되엇다..
거산 김영삼 대통령..
선우후락..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
북송의 재상 범중엄의 글에서 따왔다..
"옛날 어진 사람들은 지위나 물질적인 것에 기뻐하거나 자기의 신세로 인해 슬퍼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오로지 백성의 노고를 우려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오로지 임금의 과실을 걱정한다. 이것은 나아가도 근심이요, 물러나도 걱정이다. 그렇다면 그들은(어진 사람) 언제 즐거워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천하의 근심보다 앞서 근심하고(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즐김보다 나중에 즐긴다(後天下之樂而樂).'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수에 넘치게 OECD 가입을 먼저 즐거워하다가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
이민위천'(以民爲天) ‘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
1986년 여름에 썼다..그해 신민당 고문에 추대되었다..그리고 "다음 대선엔 출마하지 않갰다"고 선언하엿다
그러나 양김 단일화 논의 때는 국민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위 글씨를 쓰던 해 2008년
그해 2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봉화마을로 돌아간다..
그러나 2009년 5월 부엉이 마위에서 투신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측 글씨는 쓴 2011년(신묘년) 원단에 신년화두를 일기가성(一氣呵成)으로 정했다..
'일기가성'은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고 이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임기 초에는 광우병 파동, 중반에는 4대강 반대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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