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란 책을 읽고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이 책 표지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어 선뜻 집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10여년 전에 초판이 출간된 책이었다. 그때는 선방(禪房)에 다니던 때여서 못 보았던 것일까? 어쨌든 유럽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자못 궁금했다.
세계에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씨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 환자로 넘쳐났다.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틈에서 어느덧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는 중국과 아프리카,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행복에 관한 교훈을 23가지로 정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통한 웃음을 자주 터뜨리는 중국 노승(老僧)에게서 터득한 행복의 비밀이었다.
그 비밀은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건만 대부분 사람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난이나 부유함, 과거나 미래의 일들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생각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다.
이런 내용을 무릎을 쳐가며 읽으면서 최근에야 발견한 달에 대한 단상(斷想)이 떠올랐다. 우리는 때에 따라 달의 모습을 초승달·반달·보름달·그믐달 등으로 달리 부르지만 사실 달은 한 번도 이지러지지 않았다. 달은 항상 보름달인 것이다. 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글다. 우리 눈에 이지러지거나 반쪽짜리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달 자체가 이지러지거나 반쪽 난 것은 아니다. 그림자에 가려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일종의 착시(錯視) 현상이라고 할까?
우리는 이러한 착시 현상 속에서 끊임없이 보름달을 기다린다. 심지어 연초에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크고 밝고 둥그런 대보름달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보름달은 일 년에 단 한 번 속절없이 지나가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내년의 대보름달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달은 항상 보름달이다. 나날이 보름달이며, 나날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날인 것이다.
일 년에 한 번뿐인 대보름달만 즐기고 초승달 혹은 반달로 보이는 가짜 달에 속을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매일이 보름달인 진짜 달을 즐길 것인가?
그렇게 보면 우리는 수많은 착시 현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시간과 공간 자체도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서 볼 뿐이다. 이 땅을 기준으로 보면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지만 우주 허공에서 보면 오히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이다.
참선(參禪)의 가르침도 결국 고정관념과 선입견이라는 해묵은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스님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이 집대성한 한국 최초의 공안집 '선문염송(禪門拈頌)'의 제1칙(則)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셨으며 어머니 태(胎)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
석가세존께서 도솔천에 머무르시다 카필라 왕궁으로 강림하셨으며,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태에서 나와 왕자의 몸으로 계시다 출가하고, 마침내 성도(成道)하신 후 중생을 제도하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화두는 도대체 무슨 소식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신 것은 그렇다 쳐도 어머니 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고? 이것이 과연 무슨 소식일까?
참선은 본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지만 사족(蛇足)으로 한마디 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오시거나 말거나, 사람들을 제도하시거나 말거나, 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글다. 우~하하하하하!"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일 년에 한 번 대보름날을 기다려서 소원을 비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먼저 웃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행복의 창조자만 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나날이 좋은 날인
것이다.-월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7/20150127041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