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어제시 어초문답도..
어부와 초부(나무꾼)가 대화하는 그림이다..
이들의 대화는 이른바 청담(淸談), 고담준론으로서 어부와 초부 등 은자들의 소요유를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이 작자 미상이라고 하였는데, 숙종의 어람용 그림이라면 아마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것일 것이다.
이 그림에 숙종에 제시를 적었다..
兩個有人張與李 속세의 평범한 장씨와 이씨 두 사람
腰間一斧手中鯉 한 사람은 허리에 도끼를 차고, 한 사람은 손에 잉어를 들었네.
酒?何事來河邊 술기운이 얼근히 올랐는데 무슨 일로 강가로 왔는가?
應語樵漁害利耳 어부와 초부(나무꾼)이 주고받은 말은 해(害)와 이(利)에 대한 말이라네.
歲在乙未中秋下浣題 을미년 8월 하순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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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시처럼 어부와 초부는 과연 이득과 손실에 관해서 이야기 했을까?
송나라 소강절이 쓴 어초문대(漁樵問對)에 나오는 어부와 초부의 문답내용을 보자.
나무꾼이 말하기를
사람이 귀신에게 빌어서 복을 구할려고 하는 데
복을 기도하여 구할 수가 있습니까? : 그리고 얻을 수가 있습니까
외람되게 그 연유를 물어보고자합니다
어부왈
선과 악을 말하는 것은 사람이고, 화와 복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의 도는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는 재앙을 내리는데 귀신이 하늘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스스로 지은 허물은 참으로 피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어찌 없애달라고 빌어서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덕을 닦고 선을 쌓는 것은 군자가 늘 하는 직분인데 어찌 여가의 일과 그 사이에 별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나무꾼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했는데 재앙을 만나고, 나쁜 일을 했는데 복을 받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어부왈
여기에는 행복과 불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운명이고, 당하고 안 당하는 것은 인연(연분)입니다.
운명과 연분을 사람으로서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나무꾼이 묻기를
무엇을 연분이라 하고 무엇을 운명이라고 합니까
어부왈
소인이 복을 받는 것은 연분이 아니고 운명이고
소인이 재앙을 당하는 것은 당연히 연분이지 운명이 아닙니다
군자가 재앙을 당하는 것은 연분이 아니며 운명이고
군자가 마땅히 복을 받는 것은 당연히 덕을 베푸고 적선을 한 연분이지 운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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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이면 숙종 41년 (1715년 8월)에 썻다..
숙종 41년(1715년)이면..장희빈 사사된지 14년이 지났고, 3년전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확정짓고, 북한산성을 완공하엿다..
을미년 2월 호조에 명하여 동두곡(銅斗斛)을 주조하여 팔도에 반포하게 하는 등 도량형을 정비하고 있다.
그리고 봄에 사현파진백만대병도(謝泫破秦百萬大兵圖)에 어제시를 썼다.
晉時安石有高名 진(晉=東晋)나라의 사안(謝安)은 뛰어난 명성이 있어
坐却符堅百萬兵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백만병사를 앉아서 물리쳤다.
靑岡一潰旌旗倒 청강(靑岡)에서 부견의 전진군대가 궤멸되자 깃발이 거꾸러지고
鶴喉風聲走者鶯 학이 외치는 소리와 바람소리만 들어도 적들은 놀라서 달아난다.
이 그림은 동진의 적은 군대가 중원의 패자 전진의 대부대를 격파한 비수의 싸움을 그린 것이다..
우리의 소수 정예로 중원의 대부대를 격파하는 북벌의 꿈을 그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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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해 11월(至月)에 막내 아들 16세의 연령군에게 글을 내린다.
使人長智莫如學 지혜를 기르는데 배움만한 것이 없고
若玉求文必待琢 구슬의 문채는 다듬기를 기다리는 법
經書奧旨于誰問 경서의 깊은 뜻을 누구에게 물으랴
師傳宜親不厭數 스승을 친히 하며 자주 물어야 한다네
연령군은 숙종의 막내(6번째) 아들인데, 숙종 25년에 출생하여 위 글을 받은 후 5년 뒤인 21세에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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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초문답도에 시를 쓴 숙종 41년(1715년)은 정치도 안정되고, 민생과 국방도 정비되고 가정도 평안을 찾아 막내아들을 사랑하면서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시를 쓰는 평화로운 해였다..
그의 인생 절정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