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산 둘레길을 걷고 나서 가까운 육영수 생가를 방문했다..
구미의 남편 생가도 가봤으니 부부의 생가를 다 방문하는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원님이 집무하는 동헌 같은 사랑채가 딱 서있다..
이집은 대대로 내려오는 집이 아니라 아버지 육종관이 돈을 벌어 산 것이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서 당대에 거부가 되었을까?
지주의 막내아들인 그는 미곡상, 정미소, 금광업, 인삼가공업을 해서 거부가 되어 정승들이 살던 집을 샀다..
그의 어머니가 태몽을 꾸었는데, 이 연못에서 큰 자라가 기어나와 품에 안기는 꿈이었다.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낫다..
안채, 어머니 살던 방 옆 작은 방에 기거했다..
방안 박정희 글씨가 있다..
덕불고필유린..
덕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 반드시 따르는 이웃이 잇으니..
그녀의 단정한 글씨 "중용지덕"
그의 일생에 어울리는 글같다..
영부인이 된후 고향에 방문했을 때 동네 여자들에게 월남치마 해 입으라고 원단을 선물했나보다..
부잣집 쌀뒤주는 크기도 하다..
석빙고도 떡하니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소실을 5명이나 두어서 배다른 형제까지 따지면 12남 10녀 였다
서울에서 배화여고 다닐 때 서울의 아버지 작은 부인 집에서 살았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 5.16 후에 혁명사업으로 축첩공무원 1385명을 해임하는 토대가 되었는지 모른다..
처녀시절에 한반도에 무궁화 자수를 놓은 것은 미래의 데자뷰라고 해야하나..
6.25. 전쟁통에 피난간 부산에서 지인의 소개로 그녀와 그는 만났다...
약혼한 날짜는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 날이다..
그무렵 그는 육본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중령이었으며 돌싱이었다..
그녀는 자기보다 키 작은 남자에게 끌려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와 결혼한다.
그 과정에서 딸을 지지햇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갈라선다..
한창 승승장구 북진중이던 12월에 34살의 남자와 26살의 여자는 대구에서 결혼한다..
그녀의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평생 사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임종시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말이 있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신랑 육영수와 신부 박정희"라고 실수해서 웃겼다는 말이 있다..
그녀는 2녀 1남을 두엇다..
어느 개그맨이 "대통령부부가 싸우는 걸 3글자로 줄이면?", "육박전" 하는 개그를 햇다가 출연정지를 먹엇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전용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에게 이 유머를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우량아 선발대회...
그때는 출산율이 높았다..그녀도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그녀는 후덕했다..
각종 고아원,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였고, 어린이회관, 어린이 대공원, 육영재단을 설립하고, 여성회관을 건립하는데 기여했으며,
불우 청소년을 위한 정수직업훈련원을 세웠다.
특히 한센인들을 위한 소록도 지원에 관심을 쏟고 그들의 인권,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
1974년 8.13.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글씨를 쓰고, 이틀후인 8.15.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을 받아 사망한다..
생가 후원에는 정자도 잇다..
죽림옆 정자에 앉아 인생을 생각한다..
그들 부부의 사후 자녀들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차를 4대나 세울 수 있는 차고와 5명의 소실을 둔 가부장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선택한 남자, 그것도 돌싱 남자와 당당히 결혼한 여자..
영부인에 되어 소외되고 약한 사람, 고아, 불우 청소년,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했던 사람..
그녀 사후 남편이 그녀를 추모하는 시가 그녀 인생의 성적표아니겟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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