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긴 시간을 보성에서 보내기로 했다..
추석당일..보성에 도착..
방진관을 찾았다..
보성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알게된 장소..
이순신장군의 처가댁이다..
장인 방진이 보성군수를 지낸 연고로 훗날 장군의 처가 되는 방씨부인이 어릴 적에 이지역에서 살았다..
추석당일에 도착하니, 휴관이다..
해서 다음날 아침에 다시 찾아 왔다..
현판 방진관 글씨는 이순신 장군 초서에서 집자하여 만들었다..
이곳은 예전 보성군수 관사터였단다..
주련에 써있는 내용이 방씨 부인 12살때 유명한 일화다..
"방공진 사적시진 부인응성 왈유유"
방진공이 적을 쏘다 화살이 다하자, 딸이 대답하여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12살 어린 소녀가 아버지가 화살 가져오라고 소리치자, 당황하지 않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베틀의 대나무다발을 마루바닥에 동댕이 치며 "여기 있어요"하고 응대한다..
그러나 도적들은 화살이 많이 남은 것으로 생각하여 도주하였단다..
요즘으로 치면 예능에서 애드립 잘하는 송가인처럼 똘방 똘방한 딸래미였다..
12살 때 일화는 교과서에서도 배운다..
그러나 방진관에서 그녀의 80살 때 일화를 처음 배운다..
장군이 전사하고 종전이 되자 선조는 장군을 선무 1등공신 좌의정으로 추증하고, 그녀는 정경부인 작위를 받았다..
80무렵 장군의 부하였던 이운룡은 후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충무공 사당에 참배하러 왔다가 부인에게 야단을 맞는다..
"전 상관의 사당에 들어오면서 호각을 불면서 폼잡고 들어오는 것은 미안하지 않은가?'
그 남편에 그 부인이다..
이운용이 즉시 사죄를 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순신은 한양에서 문과시험을 공부하다가 방씨부인과 결혼 한후 아산 처가에 살면서 장인 방진의 후원으로 병학을 배우고
무과를 준비하여 1번 낙방을 거쳐 32살에 합격한다..
장인 방진은 무관으로 당대 명궁으로 소문이 났단다..
안내판에는 이순신 장군도 명궁이라고 써있는데, 난중일기에 50발에 43발 명중한 날이 있어 86% 명중율이 되는데, 10중 8,9의 실력이다..
이정도면 현재 궁도 승단 기준으로 치면 9단에 못미치는 8단 정도의 실력이다..
이곳에 역사 스페셜 그날 팀 최태성, 이윤석이 다녀갔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 일 중에 가장 큰 공적은 무얼까?
1. 이순신 장군을 죽이지 않은 것
2. 잡히지 않고 신속히 의주까지 도망친거
나는 1번에 한표를 던진다..
왜냐고?
몇십년뒤 명나라 말기 청나라에 대항하여 산해관을 잘 방어하던 명장 원숭환을 모함으로 투옥하여 명황제가 죽임으로써
명나라는 패망으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하던 무렵 이순신은 백의종군하여 합천에 이르렀다..
1597. 7. 18. 이순신은 칠천량 패전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8. 3. 진주 수곡면에서 삼군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었다.
그는 8. 9. 보성군 벌교에 들어왔다..
다행히 보성 고내마을의 조양창에서 봉인을 한 채 온전히 남아 있는 군량미 600섬을 발견했다.. 장정 600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지역의 이름이 득량면이 되엇다..
8.15. 추석날 장군은 선조로 부터 수군폐지령을 듣는다...
그는 울분으로 술에 취해 열선루에 앉아 유명한 장계를 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今臣戰船 尙有十二)..
"지금 수군을 전폐시키는 일이야말로 적에게 다행한 일입니다.
적은 호남과 충청 연해를 거쳐 한강까지 도달할 것이니 이것이 신이 매우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 수가 적다 해도 미천한 신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저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현 군청 부근에 잇었다는 열선루는 이제 인근 신흥동산에서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8월 17일 그는 군사1120명과 군량을 끌고 봇재를 넘어 율포해수욕장 인근 명교백사장에서 자고 다음날 군영구미 수군기지에서 병사들을 사열하였다..
그때 보성 의병 3500여명이 수군으로 자원하였단다..
그리고 의병이 제공한 배 10척을 타고 장흥 회령포로 이동하여 배설과 이억추가 끌고온 판옥선 13척을 인수하였다...
그는 처가 동네에서 식량과 군사, 배를 모두 얻어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명량대첩의 밑거름이 보성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제야 알았다..
마침 방진관 옆에 활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궁은 전투체육이자 사교모임이기도 했다..
그러니 동네마다 활터가 있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특히 남쪽 해변지역은 더하다..
보성 청학정 활터는 시설이 훌륭하다..
나도 한때 국궁 활쏘기를 한 적이 있다..
우측 엄지에 깍지끼고 좌측 손 하삼지를 굳게 밀어 활을 귀까지 만작하여 화살을 날려 145미터 거리의 과녁에 맞춘다..
그러면 "관중이요" 소리가 울려퍼진다..
5발을 1순이라 하는데, 3순을 쏘고 걸어가서 활을 주워온다..
최초로 5발을 연속 명중시키는 것을 몰기라고 하는데, 골프 싱글패처럼 몰기패를 만들어 증정한다..
나는 2년만에 몰기패는 받았는데, 입단할 정도 실력은 되지 못했다..
이제 오른쪽 무릎 연골이 손상되어 잘 걷기도 못하는 지경이 되니 다시 활쏘기로 돌아가야겠다..
추석 당일 점심을 어디서 먹나 걱정했는데..우연히 맛집을 만낫다..
한정식 청광도예원..
남편은 도예가이고, 부인이 한정식 식당을 하는데, 음식이 정갈하다...
추석이라 가족이 서빙하고 2시까지만 한다..
다행이 기다리다 빈자리를 잡았다..
9월 추석이라 때이른데, 고추잠자리가 체면치례를 해준다..
마당은 도예원답게 자기들이 초야에 묻혀있네..
잘 닦아보면 송가인처럼 빛나는 진가를 발휘할지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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