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에서 괸심을 끄는 부분이 장한종의 책가도 부분이다..
정조는 개국이래 어좌 뒤에 설치한 "일월오악도"병풍을 "책가도" 병풍으로 바꾸었다.
왕의 권위보다 나라의 융성을 꿈꾸던 정조의 취향이 나타난 것이다.
문화정치와 실학의 융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꿈구던 정조에게 책가도는 특별한 상징이었다.
규장각을 설치하고,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으로 경제개혁을 하고, 수원성을 신 공법으로 건축하는 등 개혁을 실시한다.
그의 이른 죽음으로 그 지향하는 길은 중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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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여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간 적이 있다.
그때 종군한 앙리 쥐베르가 "조선원정기"에 이렇게 말햇다.
"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조선에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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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는 서가와 책, 기물로 장식한 화려한 책가도를 병풍으로 쓰고,
일부 양반들은 분수에 맞게 서가를 빼고 책더미와 기물을 늘어 놓는 책거리 그림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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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에 대한 사랑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건수가 총 9건으로 아시아 1위, 세계4위로 입증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려대장경판, 훈민정음, 동의보감, 의궤 등이다..
***
위 책가도에 대해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땅의 역사의 박종인..
그는 책가도에 그려진 기물이 모두 청나라 자기 등 사치품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왜 책가도에 조선의 백자는 없을까?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에게 사치품 사용을 금지시키는 정책을 쓰면서 비싼 안료를 수입해야 하는 청화백자를 서민들이 쓰지 못하게 한다. 더구나 도공들이 납품 외에는 사적 영업을 금하면서 우리나라의 도자기 산업은 쇠망했다..
반면에 왕실과 일부 양반은 청나라의 자기 등 사치품을 수입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틈에 도자기 기술이 최고 수준이던 임진왜란 때 납치해간 도공으로 인해 일본은 도자기 선진국이 된다..
그리하여 구한말 왕실에서는 일본 도자기를 수입해서 썼다는 눈물겨운 사연을 아시는가?
<참고>
책가도의 비밀 : blog.naver.com/leesobia/221234647036
조선 자기산업의 몰락 : 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6/2019121603437.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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