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튼 코트 후면)


3. 햄튼 코트 궁전

 

영화 “천일의 앤”의 주인공 헨리 8세와 앤 볼린..

그  헨리8세의 아들 낳기 프로젝트에 적극 가담했던 울시 추기경..

그러나, 결국 울시는 헨리 8세에게 팽 당하고 그의 저택이었던 햄튼 코트는 몰수되어 헨리 8세의 궁전이 되었다 한다.

그 후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 정원을 조성하였다.

 

(장미정원)


궁전에 있는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정말 절대군주의 자만심을 적나나하게 보여준다.

햄튼 코트 궁전엔 영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 테니스 코트가 있다.

지금도 그 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기고 있었다.

 


후면의 호수 끝에서 바라본 궁전

- 좌측으로는 골프장과 목초지가 끊없이 펼쳐진다. 헴튼 코트 골프장엔 한국교민 회원이 엄청 많단다

 

왜 코트가 많은가?

 

런던 시내에 다녀보니, 주택에는 2층 이내의 양옥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나라 같은 아파트는 서민의 임대용이란다.

그런데, 주택에 이름이 00하우스, 00코트라고 되어있다.

 

코트(court)는 흔히 테니스 코트(경기장) 또는 법원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 주택에도 코트라고 써 있어 궁금하여 물어 보니, 집 구조가 口 자 모양으로 건축되어 사각의 앞마당이 있는 구조를 코트(court)라고 부른다 한다.  

 

***

 

햄튼코트궁전에서 윈저성으로 가는 길에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현장을 보았다.

로빈훗이 살던 시절의 영국의 섭정 존왕..

결국 귀족들에게 밀려 대헌장에 서명하였는데, 그곳이 템즈 강가 어디쯤 한적한 곳이었다.

존왕을 으슥한 곳에 유인하여 서명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겟다.

대헌장은 영국 민주주의의 단초로 자주 인용된다.

대표적인 내용으로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을 꼽는다.

성서시절에도 세리의 폭정이 등장하거니와 미국의 독립도 과다한 세금부과에서 시작되었으니 과도한 세금은 고래로 원성의 대상이었다.


이동 중 점심을 작은 휴게소에서 터키와 비프, 요크셔 푸딩을 곁들여 먹었다. 요크셔 푸딩은 바가지 과자처럼 생겨 특이하거니와 앞으로 가볼 요크지방의 음식이라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4. 윈저성


윈저성은 1070년 “노르만 정복”으로 영국왕이 된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가 런던의 서쪽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템즈강 언덕에 목조의 성채를 구축한 터에 계속 개, 증축이 이루어져서 현재와 같은 규모의 거대한 성이 건축되었다. 

한때는 보불전쟁 패배 후 프랑스에서 망명한 나폴레옹 3세가 거주할 공간을 중축하여 주고 머물게 하였다.  

현재는 여왕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된다 한다.

 

여왕의 산책길(long walk) , 성의 정문 맞은편

 나라의 덩치는 우리와 비슷한데 땅 씀씀이는 대국이다. 우리는 산이라도 개발해 넓게 써야..

 

영국왕은 한 핏줄로 계속 이어지는가?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정복왕 윌리암 1세 이후 모든 영국왕은 부계로든,  모계로든 모두 월리엄 1세의 자손이란다.

부계가 단절이 되면 왕조의 이름이 바뀌어 튜더, 스튜어트, 하노버(윈저) 왕조로 호칭될 뿐이다.

그러니 왕실의 태동당시의 터에 석조의 성을 구축하고 현재 왕가의 이름을 윈저라고 하는가 싶다.

 

( 윈저성과 이튼스쿨 사이의 다리에서 바라본 템즈강)

 

윈저성 아래 기차역을 지나 이튼스쿨 가는 길에 위치한 템즈강..

영국의 강, 개천엔 항상 물이 가득하고, 배들이 즐비하다.


이곳엔 백조와 거위, 오리도 가득하다. 

관광객의 먹이에 길들여져 백조의 우아함은 없다.

먹이가 동료의 몸에 떨어져도 사정없이 쪼며 먹는다.

 

요즘도 이튼스쿨 학생은 검은색 연미복 교복을 입고 다니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아바의 노래에도 나오는 “워털루”

그 곳에서 나폴레옹의 재기를 꺽은 웰링턴 장군은 영국의 영웅이다,

그가 “나의 승리는 이튼학교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유명한 그 학교..

우리나라의 평준화 교육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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