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뿌를 출발하여 인근 유노하나 (湯の花)에 도착..

유노하나는 온천의 유황증기에서 얻어지는 노란결정체로 입욕제로 쓰인다.

그곳에서 온천에 쌂은 계란과 구슬 사이다(라무네)를 먹었다..그 사이다는 예전의 동네 사이다를 연상시킨다..

재벌 사이다에 제패되기전 동네 마다 잇었던 금관사이다..말표사이다..

 

다시 2시간을 달려 아소화산에 다다랗다..

아소화산은  지금도 가스와 수증기를 뿜고있는 활화산으로 가스의 농도와 풍향에 따라 등정관광이 허용된단다.

마침 우리 일행이 산아래에서 점심을 들고 초원에서 승마등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등정허가가 났다고 한다.

운이 좋다..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른다..

 

 

분화구는 긴쪽의 직경 1KM의 타원형이고 깊이는 수백미터라 한다..

들여다 보니 저 밑으로 파란 물이 끊고 있고 수증기가 치솟는다..그리고 유황냄새와 독한 썩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기묘한 풍경에 약간은 오싹한 느낌이랄까?

 

 

활화산이 있고, 수시로 지진이 강타하는 일본에서는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의식이 있는지 모른다. 

늙거나 병들어서야 죽음을 인식하는 우리와는 다른..

하산은 걸어서 했다..시원한 풍광..상쾌한 바람..가벼운 걸음..

 

 

하산후 다시 1시간 30분을 달려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일본 3대 성 중이 하나인 구마모토성을 관람한다..

임진왜란후 귀국한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히데요시 아들편에 서지 않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서서 세키가하라전투에 참여한다.

이 싸움의 승리로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카토는 쿠슈의 지배자가 되어 이 성을 신축하였다 한다.

울산 도산성에서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되어 물부족에 시달리며 죽다가 살아 도망친 그의 경험에 따라 구마모토성을 지을 때 우물을 200여개 팠다고 한다..

그러나, 위 성에서 가토의 자손은 2대밖에 가지못하고,호소가와 집안이 200년간 지배해왔다..

명치유신 과정에서 1877년 일어난 서남전쟁시 위 성은 50여일 버티다 함락당하고 불타버렸다..

톰 크루주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가  서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란다..

1960년대에 들어와 천수각을 콘크리트로 복원..

 

천수각은 지금은 박물관 역할 한다..

일본도 1960년대는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하였다하니, 유홍준씨가 알면 혼날 일이다..

 

(천수각안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그림)

박물관에서 호랑이 가죽위에 앉은 가토의 그림을 보자, 이승만 대통령 일화가 생각나 사진부터 찍었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수상과 면담시 일 수상이 한국의 호랑이에 대해 묻자,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모두 잡아가서 이제는 없다"고 하였다는..

그런데, 실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당시 주인장(명령서)에 따르면,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12월 14일 조선에 파견된 장수들에게 "조선의 범을 잡아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 다수의 장수들이 경쟁적으로 야생 호랑이를 잡아 도요토미에게 바쳤으며 도요토미는 이를 약으로 썼다고 메이지시대 일본 문서들이 전하고 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사명대사와 가토가 평화회담을 한 적이 있었다.가토가  물었다. " 조선의 보배는 무엇이오 ? "

" 우리 나라의 보배는 바로 당신의 목이오. "

" 조선에서는 이 땅을 짓밟고 있는 당신의 목에 엄청난 상금이 걸려 있소. 당신의 목을 갖게 되면상금도 상금이려니와 이 전쟁도 끝날 터이니 그 아니 보배요 ? " 

 

(천수각에서 본 우토망루)

 


 

구마모토 성 건물중 유일하게 신축당시부터 그대로인 건물이 우토망루이다..

5층의 망루에 올랏다..목조건물이라 신발을 벗어 들고 오르게한다..

5층 망루에 사방의 문이 열린 곳에 앉으니 시원하기 그지없다.잠시 눈을 감고 묵상에 잠긴다..

망루의 마루 촉감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문득 진주성 촉석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 옛날 촉석루 옆 남강에서 논개가 죽인 적장은 가토의 부장인 케야무라 로쿠스케였다..

가토의 또다른 부하였던 사야가..그는 조선에 투항하여 김충선이란 이름으로 조선을 위해 싸웠다..

이렇게 구마모토는 우리의 역사와도 이어져 잇다..

(우토 망루에서 본 천수각)

사무라이들은 생사에 초탈했을까, 아니면 짐짓 외면했을까?

그들이 다도와 사꾸라의 낙화를 즐기면서 선적인 풍취를 누리려했다는 것은

생사의 절박함에서 오는 한방울의 여유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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