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고속도로 단성 ic에서 나와 산청군 시천면으로 향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에 갔다..

산천재 앞에서 서니 이름 그대로 산과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곁에 덕천강이 흐르고 강건너엔 구곡산이 서잇다..그 북쪽 어께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頭流山(두류산) 兩端水(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桃花(도화) 뜬 맑은 물에 山影(산경)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武陵(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여기를 무릉도원으로 여겼던 남명 조식..

 

그는 평생 처사로서 벼슬을 마다하고 성리학을 닦으며 실천을 중시하는 교육을 강조하여 후일 임진왜란 때  그 제자들 중에서 정인홍, 곽재우와 같은 의병장을 제일 많이 배출하였다..

 

항상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경의검(敬義劍)이라는 패검을 차고 다녔다.  

성성자라는 방울이 울릴 때 마다 '경'의 마음 자세를 되새긴다는 것이다.  

경의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다). 

 이 검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것은 의로운 행동이 필요할 때는 이를 단칼에 베듯 결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명종 때 그에게 단성현감 벼슬을 내려자 사직 상소을 올려 조정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함께 명종을 좌지우지 하는 문정왕후를 빗대어  "깊은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 그도 명종이 승하하자 애도하는 시조를 지을 정도로 인간미가 잇었다..

그시조는 교과서에 실려잇다..

 

엄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별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진다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산천재에서 보는 천왕봉)

 

 

그의 배포를 보자..

 

천섬들어가는 큰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어떻게 해야 두류산 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산천재의 기둥에 붙은 주련은

이곳에 들어올 때의 심경을 쓴 것이다..

 

 

봄 산 어느 곳엔들 향기로운 풀 없으리오마는

다만 천왕봉 하늘나라와 가까와 사랑한다네.

맨손으로 들어와 무얼 먹고 살겠나?

은하수 같은 맑은 물  십 리니  먹고도 남겠네. 


 -덕산에 살 곳을 잡으며-


 

德山卜居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산천재 길건너 남명 기념관에 들러 "남명의 한시선"을 샀다..
덕천가 지리산 언저리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앗던 남명선생..

갑천가에서 계룡산 바라보며 사는 이 사람이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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