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도 금산에서 가까운 벽련포구로 갓다..
노도가 보인다..
서포 김만중이 귀양을 살던 섬..
그곳에서 구운몽,사씨남정기 등 소설을 쓰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한 섬..
1인당 15,000원원에 낚시배를 빌려타고 가는데..
늙은 선장이 말하기를, 선착장에서 걸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리 갯바위에 상륙하여 기어오르면 바로 다다를 수 있다고 권유한다..
혹시나 갯바위에서 오도가도 못할까 걱정이 슬며시 드는데..잠벗이 선듯 수락하잔다..
하여 저 바위에 뱃머리를 대고 상륙하엿다..
선장은 즉시 배를 빼고 선착장에서 기다린다며 잠시 우리를 관망하더니
죽지는 않겠다 싶었는지 훌쩍 가버린다..
퍼즐을 풀듯이 제법 가파른 벼랑을 이리저리 헤메다가 어째든 기어올랐다..
저 위로 서포의 귀양지 초옥이 눈에 들어온다.
섬중의 섬..
예전 한양의 높은 분은 어찌 이런곳을 알고 귀양처로 잡앗을까..
섬중의 섬에서 다시 위리안치까지 햇다..
즉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쳐서 출입을 제한하엿다니 참으로 지독하다..
어차피 작은 섬에 갈 곳도 없는데..
귀양처 초옥의 툇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가 아니라 호수처럼 보인다..
이 외로운 섬에 귀양와서 할 것은
분노하다 미치든지..자기의 세계에 몰입해야 살 것 같다..
추사는 9년간의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대흥사 대웅전 글씨를 쓴 원교 이광사는 23년간의 절해고도의 귀양살이에서 동국진체를 완성하엿고,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간 귀양살이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저술하엿고
정약전은 흑산도의 귀양지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하고 결국은 그곳에서 죽었다..
그러니 서포도 이 귀양지에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으리..
초옥에서 나와 선착장으로 향하다가 돌아다 본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할어버지 김반의 묘소는 내가 사는 동네에 잇다..
그 곳에 가면 김익겸의 정려비가 서잇고 그아래 서포 김만중의 소설비가 서잇다..
내가 그의 부자를 간접적으로 연결하는 안테나가 된듯하다..
청상과부로 어린 2아들을 키우신 서포의 어머니..
자식 덕을 볼만한 나이에 아들은 당쟁으로 귀양살이하게되자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 어머니를 위로하기위하여 썼다는 구운몽..
그야말로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남가일몽이라..
그 소설을 쓰고 그는 이곳에서 초탈한 심정으로 귀천하였을까?
선착장으로 가는 길..
아주 아담하고 소담한 오솔길이다..
이런 길을 좋아한다..
서포의 오솔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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