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사의 사자상)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 중 하나인 스위스. 그러나,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끊임없는 가난이 이어졌다. 그래서 발달한 산업이 군인 수출, 즉 용병 산업이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많은 남성들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외로 나가 싸웠던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투아 네트가 시민혁명군에 포위됐을때 베르사이유 궁전을 마지막까지 지킨 것은 수비대가 아니고 궁전 경비 계약을 맺은 스위스 용병이었다. 프랑스 수비대가 도망간 후 시민 혁명군이 스위스 용병에게 퇴각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 220명은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 제의를 거절하고 남의 나라 왕과 왕비를 위해 끝까지 용맹스럽게 싸우다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이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는 글이 씌어 있었다 한다.
또한 1506년 1월부터 로마교황의 경호를 맡기 시작하여 지난 500년동안 목숨을 걸고 교황과 교황청을 지켜내왔다는 것. 1527년 스페인 군대가 교황청을 공격했을 때, 당시 용병 189명중 147명이 사망하면서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도피를 도운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또 나폴레옹군대가 로마를 침략했을 때인 1798년 교황 피우스 6세를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대부분 전사했다. 이 스위스 용병의 신화 같은 이야기는 이자는커녕 돈 보관료를 받아가면서 세계 부호들의 자금을 관리해주는 스위스 은행들의 신용도와 안전도가 왜 세계 제일이 되었는지 잘 말해 주고 있다. *** 자신의 신용만이 아니라 자손의 신용까지 생각한다는 계약준수의 정신.. 신뢰부재, 신용불량의 시대에 살면서 신용, 신뢰에 대해 생각한다. 신용..신뢰..신의.. 無 信 不 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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