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다산에게
추사가 쓴 글씨의 일부.
다산이 추사와 함께 다산의 제자인 황상(1788~1870)이 머문 산방을 찾아 하룻밤을 지내는데,
황상은 두 사람에게 조로 지은 거친 밥에 아욱국을 끓여 아침으로 내놓는다.
청빈한 생활과 정성에 감동한 다산이
남원노규조절(南園露葵朝折)
동곡황량야용(東谷黃梁夜용)
남쪽 밭 이슬 젖은 아욱 아침에 꺾고
동쪽 골짜기 누른 조를 밤에 찧네’는 시를 짓고
추사가 이 시구 중 露葵와 黃粱에다 社를 붙여 글을 썼다. 이는 ‘고결한 선비의 거처’라는 뜻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다산과 추사의 나이 차이나 유배생활 시기 등에 비추어 두사람이 함께 황상의 집을 방문한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훗날 황상의 청빈생활을 전해들은 추사가 이에 감동해서 다산의 제자에게 '노규황량사'를 써 주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 다산과 추사
다산과 추사는 24년의 나이 차이가 나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와추사가 동갑내기여서 아들처럼 여길 연령이다.
다산초당에서 다산에게 시를 배우고 글을 배웠던 제자 초의대사와 추사는 동갑이다..
추사가 다산에게 주역에 관하여 토론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고, 추사가 보낸 고려청자에 심은 수선화를 받은 다산이 쓴 시가 전한다.
<수선화>
신선의 풍채나 도사의 골격 같은 수선화가 仙風道骨水仙花
30년을 지나서 나의 집에 이르렀다. 三十年過到我家
복암 이기양이 옛날 사신길에 가지고 왔었는데 茯老曾携使車至
추사가 이제 대동강가 아문에서 옮기었다오. 秋史今移浿水衙
외딴 마을 동떨어진 골짝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서 窮村絶峽少所見
일찍이 없었던 것 얻었기에 다투어 떠들썩하다. 得未曾有爭喧譁
어린 손자는 처음에 억센 부추잎에 비유하더니 穉孫初擬薤勁拔
어린 여종은 도리어 일찍 싹튼 마늘싹이라며 놀란다. 小婢翻驚蒜早芽
흰 꽃과 푸른 잎새 서로 마주 서 있으니 縞衣靑相對立
옥 같은 골격 향그런 살결에서 향내가 절로 풍기는데 玉骨香肌猶自浥
맑은 물 한 사발과 바둑알 두어 개라 淸水一盌碁數枚
티끌조차 섞이지 않았으니 무엇을 마시는지.…… 微塵不雜何所吸
**다산과 황상
그들 사제의 관계는 애뜻하다..
강진에 유배갔던 초기 주막에 임시 거쳐할 때 한양의 유명한 선생님 귀양왔다는 사실을 알고 15살의 황상이 찾아왔다고 한다.
황상이 글을 배운지 7일만에 다산 선생은 한 권의 책을 주었는데...
이 때, 제자 황상은 책을 받기를 꺼리며, 자신은 머리도 좋지 않고, 융통성도 없으며, 잘 배우지도 못한다며 걱정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다산선생은 편지 한통을 써주었다.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단점)을 너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첫째 ,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은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 , 글 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은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 , 이해력이 빠른 병통은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자는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 데 있다.
이 가르침을 받은 황상은 말씀을 평생 잊을까 두려워 하며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학자이자 시인으로 성장한 황상..
다산이 유배지에서 풀려난 후 가야산 백적동에 은거하며 다산초당(茶山艸堂)과 같은 원림인 일속산방(一粟山房)을 일궈냈다.
다산은 황상을 그리워한 나머지 자신에게 소식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토로할 정도였다.
이미 황상의 나이도 48세에 이르고, 정약용은 74세의 노인이 되어서 황상은 떠나간 스승을 마냥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스승을 뵙고자 찾아 나선다. 스승의 회혼례 축하와 죽기 전에 꼭 한번 뵈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열흘을 걷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한 것이다.
18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꿈 같은 해후를 만끽하고 황상은 다시 강진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귀향 중에 스승의 부음을 듣는다. 그는 길을 되돌려 마재로 돌아오고 상을 치른 후 강진으로 돌아간다.
후에 스승의 자제인 정학연 형제와 평생 의지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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