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불기
단소는 5개의 구멍을 가진 텅 빈 대나무다.
죽은 나무에 생기를 불어넣어 오묘한 소리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 단소의 묘미다.
음색은 구슬같이 맑고 어쩌면 처량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단소는 퉁소보다는 조금 작고 기원도 확실하지 않으나 퉁소와 함께 신라의 3죽(대 금. 중금, 소금)이라는 저(笛)보다 훨씬 이전에 민속에 자연 발생적으로 사용하다 가 조선 후반에야 정악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첫해에 국궁을 배우고 다음해에는 불현듯 단소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숙세의 인연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하여 수소문을 하니, 홍성에 내포제 시조의 명인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9순의 박병규옹이 단소강습을 하신다하여, 몇 분을 모아 단소 강습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선 단소는 1만원짜리 대나무로 된 것을 구입하였다.
단소를 처음 배울 적에 단소 소리를 내는데 애를 먹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입 모양과 단소의 취구가 적절히 맞아야 하고, 또 떼었다가 다시 입술에 대도 자연 스레 소리가 날 정도로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전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단소를 배운다하여 한번 따라 불어보니 영 소리 가 나지 않은 적이 있어 은근히 걱정을 하였으나, 정작 배우기로 작정을 하고 단소 를 입에 대니 의외로 쉽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정간보(井間譜)를 보고 중(仲),림(林),무(無),황(潢),태(汰) 등 율명과 그 율명에 따른 운지법 즉 5구멍을 손가락으로 어떻게 막고 잡느냐하는 방법을 배운 다.
정간보는 세종대왕이 창안했다는 우리고유의 악보체계로서 우물 정자의 모양의 칸 을 그어 그 속에 율명과 음의 길이, 높낮이 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악보 읽기가 쉬워, 오래동안 서양식 악보만 배운 나에게도 금세 익숙하게 다가온다.
단소는 5개의 구멍을 율명 별로 운지하되, 같은 구멍을 이용하더라도 부는 세기를 조절하여 저, 중, 고의 3단계 음을 내므로 배우기가 용이하고, 크기도 작아 휴대하 기 편하나, 음폭은 대금보다는 적다.
율명에 따른 운지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가장 간단한 율명으로 이루어진 “아리랑”을 배운다.
“중림중림무황무황 태황태황무림중림중림···”
처음엔 단소를 10분만 불어도 하늘이 노래지는 것처럼 숨이 가쁘다.
1개월 되니 어느 정도 불어지고 2개월 째에는 여럿이 합주도 되어 선생님이 장구를 가지고 굿거리장단을 치면 그 박자에 맞춰 합주를 한다.
그런데, 장구로 치는 굿거리 장단이 보통이 아니다. 그 장단에 맞춰 따라가기가 바쁘다.
이어 천안삼거리, 늴리리타령, 한오백년을 배웠다.
3개월 째 오죽(烏竹)으로 만든 단소를 구입하였다. 재질에 따라 황죽, 오죽 등의 단소가 있으나 청아한 소리로는 오죽을 친다. 오죽 단소로 불어보니 소리가 더욱 청명하고 힘도 덜 드는 것 같다.
가끔은 사무실에서, 주로 집에 홀로 앉아 단소를 부노라면 호흡이 깊어지고 뱃살 도 빠지는 느낌이 든다. 풍선 불며 다이어트를 한다는데 그 보다는 단소 불며 다이 어트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일년정도 지나니 고음을 자연스럽게 낼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원래는 단소곡의 정상이라는 청성곡까지 배우려고 하였으나, 능력과 시간이 미치지 못하여 그에 이르지 못하고 애창곡의 정간보를 구하여 연습을 계속하고 하고 있다.
과녁과 “나” 사이에 일체의 잡념을 없애고 무아지경으로 집중하여 활과 과녁의 일체를 느끼기 위하여 활쏘기를 계속한다면, 단소는 그 “나”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스승이다.
단소가 5개의 구멍을 가진 텅 빈 대나무이듯, 사람은 눈, 귀, 코, 입, 항문의 5개 구멍을 가진 가죽부대에 비유된다.
단소는 텅 비어있어 생기에 그대로 조응하지만, 사람은 기억이나 단편지식들이 거 줄처럼 얽혀 있어 생기에 잘 조응하지 못하고 고정관념이나 이해득실로 왜곡되어 나타나기 쉽다. 단소를 불면서 텅 비고 열린 가죽부대가 되려고 한다.
지금 사는 곳이 천변이라 자연스레 아침, 저녁으로 강가로 산보를 다니는데, 이 스승인 단소가 동반자이다.
아침이나 밤에 산보를 마치고 강가에 앉아 단소 한 곡 부르노라면 마음은 고요하고 강변의 정취는 요요(寥寥)하여 피아의 구별도 사라지고 오직 한가로울 뿐이다.
강 흐르고 꽃 피니
백구는 날고 잉어는 뛰네
바람은 본디 고요하고 청산은 묵연한데
단소 비끼들고
한소리
물결 위에 띄우노라.
(200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