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겨울비가 솔찮히 내린다..
하여 도래깨질을 포기하고..점심식사후에 동네 걷기에 나섰다..
입소문이 무성한 대전 현충원 산책길..
입구에 해태가 길을 정화하고 있다..
입구부터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촉감을 느끼며 걷는다..
갈대..초로의 백수를 휘날리며 돌아보네..
돌아보면 무엇이 보이나..
길가에 적힌 시가 묵언으로 답한다..
묵언으로 답할 것이 어디 천안함 뿐이랴.. 울진 삼척..1.21..아웅산..KAL기..8.18 도끼..금강산 관광객..
징검다리를 건넌다..
돌다리도 두둘겨 보고 건너라지 않더냐..
어느 돌은 디딤돌이고 어느 돌은 걸림돌이라니..
다양한 길이 전개된다..고개마루를 넘어 계단을 내려오니 자그락 거리는 오솔길이다..
그러는 일방...대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 어디까지더라..
새소리도 제법 들린다..식별하느니 까치소리 밖에 없지만..
가을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이젠 가거라..내 겨울 잘 보내마..
비록 첫추위에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하였다만..
그렇게 지내온 세월 아니더냐..
군인들의 묘역..죽어서라도 햇볕이 따뜻한 양지에서 지내기를..
여기에도 민간의 묘역이 잇네..
판충추부사겸 의금부 당상을 지낸 양반이 선점한 명당자리..
연안 이씨 종중 땅이었는데, 국가에서 이 땅을 수용할 당시 이 묘역의 주인공들도 나라의 유공자들이라 그대로 두기로 했단다..
공식적인 코스는 끝나고 개설예정이라는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덜 다듬은 길이 더 좋다..
어제 오늘 내린 비로 개울도 흐르고..
하지만, 임도는 갑하산 언저리를 맴돌다 막혀있다..
돌아오는 길..물가 벤취에 앉아 잠시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숨을 돌린다..
벤취 옆 편지에 눈길이 갔다..
1950. 8. 11. 전사한 17살 학도병의 편지..가슴이 찡하다..
<위 편지는 다부동전투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다부동은 경북 칠곡이고...위 편지는 아래서 보듯 포항여중에서 발견된것
대전 현충원 관계자가 이글을 보면 정정하길 바람>
집에서 떠날 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절하고 헤어졌겠지..
이우근 학생은 당시 서울동성중학교 3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71명의 학도병으로 참전..
1950. 8. 11. 포항여중학교에서 60여명의 군인과 함께 북한군 공격에 맞서 11시간의 사투를 벌인다.
71명 학도병 중 48명이 전사..
그날 전사한 이우근학도병의 주머니 속에서 피로 얼룩진 메모지에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글이 발견됐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十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二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우기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七一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 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허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재검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
그럼 ....이따가 또 ...........
집에 돌아와 학도병 이야기를 다룬 "포화속으로"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영화에 이 편지가 나온다..
누란의 위기에서 몸바쳐 지킨 나라..세계 최빈국에서 G20 수준으로 성장햇다..
그당시 천막교실 땅바닥에서 공부한 사람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엇다..
저 수렁같은 밑바닥을 헤치고 올라선 사람들..
광우병..FTA 정도는 그때의 고난과 비교되겠나? 두려워하지마라..
자신을 믿어라..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믿어라..
걱정을 현실화 시키는 하수처럼 살지 않고, 상상하는대로 이루어 나가는 고수처럼 살게되리니..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지는 거야
미래를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이루어 질 일은 이루어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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