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심은 밀양密陽 출신 기생이다.
서울로 뽑혀서 왔는데 검무 솜씨가 당세에 으뜸이었다.
동국진체로 유명한 白下 윤순尹淳이 운심에게 마음을 두었는데, 백하는 글씨를 잘 썼던지라 운심에게 장난삼아 말하였다.
“너의 칼춤이 나에게 초서(草書)의 원리를 깨닫게 할 수 있겠느냐?”
운심도 평소에 공의 글씨를 사모하던 터라 한 점 얻어 가보로 간직하기를 원하니, 공은 써 주겠다고 허락은 하였지만 바로 써 주지는 않았다.
어느 가을비 내리는 날 뜰 가득히 떨어진 낙엽들을 바라보면서 백하는 홀로 앉아 있었다.
이때 운심이 홀연히 술을 가지고 와서 권주가를 불러 공에게 권하였다.
백하는 흔쾌히 마시고 약간 취하자 자꾸만 붓과 벼루를 힐끗거렸다.
운심은 재빨리 비단 치마를 벗어 앞에 펼쳐 놓으며 말했다.
“공께서는 지난날의 허락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백하는 단숨에 붓을 휘둘러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쓰고 나서 스스로도 만족해하였다.
백하는 운심에게 깊이 간직하고 꺼내서 남에게 보여 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 뒤 자신이 취하여 우연히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에게 이 일을 발설하였다.
풍원군이 운심을 불러 물으니, 운심은 감히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고 글씨는 마침내 풍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운심은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한스럽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