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 걷기에 나섰다..번개를 때려 달라고 빌었더니 젊은 산신령이 선녀들을 대동하고 번개를 쳐주니

1만볼트에 감전된 듯한 기분으로 걸었다..

오전 목표..향적산 국사봉..

 

 

맨재로 오르는 길...

 

 

이 산에는 김일부, 야달 이곡, 탄허 등 주역의 대가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기가 센 곳이라 그런지 절과 암자, 무속신앙 등이 산재한다..

 

 

동행한 사람은 잠자리까지 짊어지고 가네..ㅎ

 

 

동행이 초파일을 맞아 법문을 발표한다..

 

임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임께 보이자고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임이 주시는 것이라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

 

자나 깨나 쉬일새 없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천하 하고 많은 사람이
오직 임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내가 임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살바야(지혜)를 배웠노라

 

인제 알았노라
임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 

 

                                   - 춘원 이광수의 애인 육바라밀 -

 

 

맨재에서 장군암으로 가는 길은 그윽한 숲속 길이다..

 

 

정상 직전에서 알파스 몬테 와인 한잔하고..

나의 초파일 법문..

젊음이란 매일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것..

우리가 새 단어를 배우는 한 젊음은 계속 된다..

 

 

정상 너러바위에 누워 사바세계를 바라보며..

주제가 문리버, 토셀리의 세레나데, What a wonderful world,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듣고 하산한다..

 

 

그 노래 속에서 텅빈 큰 공간을 만난다..

 

 

내려올 때는 무상사로 직행하는 코스로 내려간다..

 

 

무상사에 당도하니 아직 점심공양이 끝나지 않았다..

비빔밤과 떡, 과일까지 보시받고 흐뭇하게 식사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다 이절의 창건자 숭산선사의 글씨를 만났다..

무심통..무심의 경지라는 말이겟지..

숭산선사는 만공의 손제자쯤 되는 분이다..

일찌기 외국 포교에 뜻을 두어 일본을 거쳐 미국에가서 짧은 영어실력으로 하버드 출신 파란 눈들에게 전도를 하여

티벳의 달라이 라마, 일본의 스즈키에 이어 서양에 영향력잇는 선사로 알려진 분..

이절 무상사는 그의 서양제자들의 수행공간이다..

 

 

그래서 눈 푸른 납자들이 많이 보인다..

물론 주지스님도 서양인이다..

 

 

법당에서는 초파일 맞이 예술제가 벌어진다..

들여다보니 신도 또는 신도의 가족들이 나와 춤,연주 등의 실력을 발휘하는 부처님을 위한 애교 한마당이라 할까?

 

 

점심공양 잘 받고..진심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경하드리며..

논산군 노성면에 있는 공자의 사당 권리사를 거쳐 바로 옆 명재고택으로 향한다..

 

 

고택의 항아리가 반가워한다..

8-9년 만에 오는데 그새 항아리가 많이 늘어 난 것 같다..

 

 

 

 

명재 고택의 액기스..사랑채에 앉아 조선의 사대부 마음을 느껴보려고 한다..

사랑채에 현판을 보다 보니..

 

한쪽엔 허한고와(虛閑高臥)..다른 한쪽엔 도원인가(桃源人家)라 걸려 있다..

다 비우고 한가롭게 누웠으니 여기가 바로 무릉 도원이라..

함께 풀이하니 제맛이다..

 

 

또 한 쪽엔 이은시사(離隱時舍)라 써있다..

떠나고 은거할 때를 아는 사람이 사는 곳..

 

 

 

 

명재 윤증은 현종,숙종 때 사람으로 스승인 노론 영수 송시열과 갈라서서 탕평론을 주장하며 소론의 거두가 된다..

그는 임금이 벼슬을 내리며 불러도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 끝내 나서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벼슬이 정승급에 이르러

이른바 "백의정승"으로 불렸다..

물론 이집은 그가 지어 살던 집은 아니고 후학들이 지어드렸으나 정작 본인은 거주하지 않았단다..

 

 

이제 우리의 주 목적지 고택의 뒷산..노성산성 임도를 오른다..

 

 

 

시 한수 감상해볼까?

 

나는 성질이

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

줄무늬 비단 옷만 골라 입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

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배꼽을 보여주지 않는다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관능적이다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오장육부를 다 빼 주고도

살 속에 뼛속에 묻어 두었던

보석까지 내 놓는다

 

 

 

노성산성이 보인다..

겨울철 낙엽이 질 때보면 주변의 사방이 잘 보이는 요충지라고 한다..

 

 

금강대도 건물이다..

토암 이승여라는 분이 1906년에 도를 깨치고 창시하였단다..

유불선을 통합하여 의성일관(義誠一貫) 즉 올바름과 정성으로 하나됨을 강조한단다..

 

 

담벼락에는 꽃이 이쁘게도 피었다..

내 마음의 꽃도 이리 이쁘게 피어나길..

 

 

정상 전망대에서 잠시 쉬다가 하산하는 코스를 권리사 방향으로 잡앗는데..

표지판이 너무 엉성하다..

올레정신을 여기다 반영하면 거저 좋은 코스가 만들어 질텐데..

 

 

찔레꽃도 내 마음의 꽃이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말없이 눈물 흘리는 그 마음이 정성 성(誠)자 아닐까?

 

 

이  부근 어디서 애향탑과 상월면 표지판이 헤까리는 바람에 애향탑 쪽으로 내려왔는데, 길이 가파르고 별루다..

상월면 표지 쪽으로 갔어야 권리사 쪽으로 내려간다..

(** 전망대를 지나 처음에 나오는 상월면 표지를 따라가면 안되고, 3번의 삼거리를 직진하다가 권리사 0.87km 표지가 나오거든 그 방향으로 가서 다시 만나는 삼거리에서 상월면, 애향탑 표지가 나오거든 상월면 표지를 따라 가시라..) 

 

 

노성산의 전망이 툭터져 이 부근에서는 요충지임을 알수 있다...

백제 이후 고려, 조선에 이르기 까지 활용되던 산성이다..

 

 

(오늘 코스) 궐리사 - 명제고택 - 애향탑 - 노성산성- 정상 - 옥래봉 - 애향탑- 권리사,  7km

 

 

돌아오는 길..퓨전 한식 집에 들렀다..

 

 

오늘 걷기의 소감을 대신하는 이 그림을 식당에서 만낫다..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언제나 웃는 멋쟁이..

 

그렇게 또하나의 봄을 떠나 보냈으나 여전이 내 마음의 봄날은 계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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