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말한다..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행복 속에 불행이 숨어있고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
행복이 불행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퇴계 이황은 자신의 묘갈명에 이렇게 썼다..
낙중유우, 우중유락(樂中有憂 憂中有樂)
즐거움 가운데 근심이 있고, 근심 가운데 기쁨이 있다..
불문에의 요체는 불이사상이다..
즉 번뇌와 보리는 둘이 아니다(菩提煩惱不二)는 것이다..
리틀부다라는 영화를 보면
마군의 군대가 부타께 해를 가릴 정도로 화살을 쏘는데 부타의 미소 지음에 모두 꽃이 되어 떨어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인생사 세옹지마라는 고사성어도 이런 진실을 품고 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 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큰 지혜'와 '바보'가 다르지 않다.
어찌 밖을 향하여 보배를 구하랴.
신전(身田)에 원래부터 '밝은 구슬'이 있다.
'바른 길', '삿된 길'이 둘이 아니니,
'범부'와 '성인'이 같은 것임을 알라.
미혹'과 '깨달음'이 본래 차별이 없고
'열반'과 '생사'는 한결같은 것이다.
끝끝내 공적(空寂)함을 사무쳐서
오직 뜻과 생각이 맑기만을 구하라.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남음 없는 도'(無餘道)에 든다.
온갖 것이 불사(佛事) 아님이 없으니
어찌 생각을 거두면서 좌선(坐禪)을 하랴.
'망상'이 본래 공적한 것이니
'반연'(攀緣)을 끊으려 할 것이 없다.
지혜로운 이가 도무지 '얻을 마음'이 없이 되면
자연히 시끄러움도 다툼도 없어진다.
'무위의 대도'(無爲大道)를 알지 못하면
언제 깊고 현묘(玄妙)함을 증득하랴.
부처와 중생은 한 종류이니
중생이 그대로 세존(世尊)이시다.
범부는 허망하게 분별을 내어
'없음' 가운데서 '있음'을 집착하며 어지럽게 설친다.
성문(聲聞)은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구하니
마치 떡가루를 버리고 떡을 찾는 것과 같다.
'번뇌'가 그대로 '보리'(菩提)이니
'마음'이 없으면 '경계'도 없다.
지혜로운 이는 '부처'를 구할 마음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사됨(邪)과 바름(正)에 집착한다.
음욕(淫慾)의 성품이 원래 공한 줄 알면
'불가마 지옥'이 저절로 식는다.
― 지공(誌公)선사의 십사과송(十四科頌) 중에서―
'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 (0) | 2013.11.26 |
---|---|
소옥아.. (0) | 2013.11.09 |
겨울이 없으면 꽃도 없다.. (0) | 2013.10.28 |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0) | 2013.05.16 |
깨달음이란 (0) | 2013.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