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2일째 경주 팔우정 사거리 해장국 거리에서 묵사발 같은 해장국을 먹고..
양남면 하서리 하서항 파도소리길로 간다..
이길의 상징인 부채꼴 주상절리...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 약 1.6km 걷기 코스로는 거리가 짧고, 풍광도 그닥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읍천항 벽화를 보며 주차장까지 걷는다..
너무 짧은 거리..이어 문무왕릉으로 간다..
여기 갈매기도 새우깡, 감자깡를 즐긴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 수중릉에 제사하고 바라보면 이견대..
이곳에서 만파식적의 설화가 전해진다..
갈매기와 놀다가 지쳐서 인근의 감은사지로 간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한 원찰로 용주사를 삼았듯이 문무왕을 위한 원찰이 감은사엿다..
이비석 옆에 문문왕의 유언비가 있다..그 내용은 이렇다..
과인은 어지러운 때에 태어난 운명이어서 자주 전쟁을 만났다. 서쪽을 치고 북쪽을 정벌해 강토를 평정했으며, 반란자를 토벌하고 화해를 원하는 자와 손을 잡아 마침내 원근을 안정시켰다. 위로는 선조의 유훈을 받들고 아래로는 부자의 원수를 갚았으며, 전쟁중에 죽은 자와 산 자에게 공평하게 상을 주고 안팎으로 고르게 관작을 주었다. 병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천수를 다하도록 했으며, 납세와 부역을 줄여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해 백성들은 자기의 집을 편하게 여기고 나라에는 근심이 사라지게 했다. 창고에는 산처럼 곡식이 쌓이고 감옥에는 풀밭이 우거졌으니, 가히 선조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고 백성들에게도 짐진 것이 없었다고 할 만했다.
내가 풍상을 겪어 드디어 병이 생겼고, 정사에 힘이 들어 더욱 병이 중하게 됐다. 운명이 다하면 이름만 남는 것은 고금에 동일하니, 홀연 죽음의 어두운 길로 되돌아가는 데 무슨 여한이 있으랴! ......
세월이 가면 산과 계곡도 변하고 세대 또한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오왕(吳王: 오의 손권)의 북산 무덤에서 어찌 향로의 광채를 볼 수 있겠는가? 위주(魏主: 조조)의 서릉에는 동작(銅雀)이란 이름만 들릴 뿐이로다. 옛날 만사를 처리하던 영웅도 마지막에는 한 무더기 흙이 돼, 나무꾼과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팔 것이다. 그러므로 헛되이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역사서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더라도 나의 혼백을 구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을 조용히 생각하면 마음 아프기 그지없으니, 이는 내가 즐기는 바가 아니다.
숨을 거둔 열흘 후 바깥 뜰 창고 앞에서 나의 시체를 서국(西國: 印度)의 법식으로 화장하라. 상복의 경중은 본래의 규정이 있으니 그대로 하되, 장례의 절차는 철저히 검소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인근 횟집에 갔다..
1인당 2만원에 해초쌈과 활어회, 매운탕까지 정말 먹을만하고 여주인의 서비스도 좋으니 밖엔 기다리는 사람이 줄선다..
감포에 간 사람에겐 추천할만한 식당이다..
만파식적의 전설이 어린 왕의 길..용연폭포..황룡사지..감포 파도소리길..문무왕릉..신라동해구를 걸었다..
1500년전 통일의 기원으로 80미터 높이의 황룡사 구층탑을 세우고 삼국을 통일한뒤
당나라의 20만군대를 격퇴하고 통일된 나라를 지켜낸 선인들..
나아가 장차 왜의 망동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려던 의지..
모두 오래된 미래요 미구에 닥칠 데자뷰 같기도 하다..
<추천걷기> 감포깍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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