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산티아고..내포 천주교순례길을 걷는다..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에서 시작한다..
이곳도 길의 행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한편으론 원효 깨달음의 길도 있다..
하루강아쥐들의 환영을 받으며 한티고개로 향한다..
다홍꽃밭에서 흰 나비 두마리 댄스데이트를 즐기네..
돌담과 양철지붕 사이로 붉은 장미 두송이 6월 첫페이지에 악센트를 찍는다..
참꽃마리...옥잠화처럼 새참하다..
한티고개 정상 쉼터에서 잠시 물을 마시고..
이곳에서는 아라메길의 사명을 띠고 잇네..
여기서부터 십자가의 길14처가 시작된다..
'십자가의 길 14처'는 예수님이 죄인으로 선고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까지의 고난을 14 장면으로 나누어,
그 고난을 묵상하는 곳이다..
그날의 가시관처럼 엉컹퀴의 이파리 날이 섰다..
웬 토끼들이 길가에 놀길래 "집토끼냐, 산토끼냐" 물었더니 토끼기 시작하여 농장으로 들어가네..ㅎ
우리가 걸어 온 한티고개가 천주교 박해시 신자들을 해미읍성으로 압송하던 길이었다..
자..지금부터 사다리 타기 시작!!
오디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샤스타 데이지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개울 건너는데 개굴리 울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고개를 드니 강쥐 4마리..흐믓한 미소를 짓는 어미..음..저 강쥐를 분양할 떼 되었네..
오늘 길의 하일라이트..저 다리를 건너 왼쪽 오솔길을 따라가야 저수길 옆을 통과한다..
잡초 우거진 길..엉컹퀴 가득한 길..
민들레도 불어보고...
길가에 보리를 심은 이유는??
관상목적?? 자투리 땅이용??
강낭콩 꽃 맞나?
보리수..뽀리똥..
천정사..최인호가 쓴 길없는 길의 주인공..
한국 불교의 중흥조..경허선사가 오도후 보림하던 절..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한다..
해미는 천주교신자들의 순교지이기 때문..
1866년(조선 고종 3) 부터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등으로 처형하였는데,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고 전한다.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이 건립되어 있다.
진남문이 명나라 홍치4년 = 성종 22년(1491)에 건립되었다고 써있다..
옥사 앞 회화나무,
천주교 박해당시 이 나무에 천주교신자들의 머리카락을 묶어서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한다
옥사에서 형이 집행되고 있는데..
이 분의 죄명은? 아래와 같다..ㅎ
이순신 장군이 1578년 군관으로 10개월 이성에서 근무한 적이 있단다..
그때는 육군소속이었나 보다..
전에 없던 활터도 생기고..
콩알카페 옆 식당에서 점신특선 냉면을 먹고..
순교지라 성당이 많다..
성당 옆에 거하게 성업 중인 모텔의 낙서가 나를 웃긴다..
초딩이후 처음 보는 은어..ㅎㅎ
부처님이 꽃과 미소로 설법하셨거니와
예수님도 꽃으로 설교하셨다..
"들에 핀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
솔로몬의 찬란한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박해시 자리개질당하여 생매장된 곳..
자리개질이란 볏단을 두손으로 잡고 털듯이 내려쳐 죽이는 방법이다.
마치 개구리를 잡아다가 맷돌위에 힘차게 패대기를 치는 것과 같다.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진영 밖 해미천변 들판에 큰 구덩이를 파고 십수명씩 생매장하고, 둠벙에 묶인 몸을 밀쳐 죽이기도 했다.
박해당시 신도들이 이들은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했는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들었기에 이곳이 '여숫골'로 불리고 있단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의 역사..
처음은 정조 시대..추조적발사건으로 김범우를 귀양보내고..
1791년 진산의 윤지충이 신주를 불태운 사건으로 신해박해가 촉발되어 윤치충, 권상연이 처형된다..
당시 성리학의 1자 1구도 건들였다가는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시대에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으니 유학자 양반들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서양의 선교정책이 스페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동양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동양의 제사제도를 우상숭배로 취급하는 문화 충돌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낫다..
그래도 관대하던 정조가 죽고, 정순왕후를 중심으로한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잡자, 남인 시파들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주문모 신부의 처형 등 신유박해가 시작되고...정약용의 형제 정약종 등이 순교하고, 정약용, 정약전이 유배당한 것이 이무렵이다..
그런데, 황사영이 백서(비단편지)를 써서 중국에 보내려던 편지가 적발되어 탄압의 명분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내용 중에는 신앙자유를 얻기 위해 1) 교황이 청 황제에 편지하여 청나라의 한성으로 편입시키게 하거나 2) 서양 그리스도 국가들이 백 수백척에 군사 5-6만명을 실고와서 선교를 허용케하거나 조선을 정복해달라는 귀절이 있으니..
당시 지배층의 탄압은 한층 강화되었다..
헌종 때의 김대건 신부의 순교등 박해를 거쳐 대원군 시절 혹독한 병인박해가 시작된다..
대원군은 초기에 천주교를 적대시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의 남침야욕을 막기 위해 주교 베르뇌(Berneux,S.F.)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측과 교섭도 지지부하고 국내 정치상황이 변화하자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를 시작..
그중 리델 신부가 탈출 프랑스 극동함대에 구조를 요청..병인양요가 시작된다..프랑스 함대 7척의 공격으로 강화도가 불타는 전란을 겪자 천주교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더구나,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해미부근 덕산)를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하자, 해미부근 내포지방의 의 천주교 탄압은 더욱 가혹했으라 생각된다..
한편, 교황청이 1939년 제사를 부분 허용한 데 이어 1962년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제사의 전면 허용과 타종교와의 대화를 인정하였다..
1983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김대건 신부 등 103위의 한국 복자들을 성인 반열에 올렸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에 대한 시복(諡福)을 승인했다.
교황이 방한해 8월15일 시복미사를 집전하고 해미읍성을 방문한다..
오랜 세월 수많은 순교와 제사 허용 등으로 천주교는 한국 땅에 토착하였고, 운보의 한복 입은 예수님이나 한복입은 성모상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되엇다..
그날의 흘린 피처럼 6월의 장미는 붉다..
예산군 덕산면 대치2리 입구 - 한티고개 - 현대폐차장 - 대곡1리 마을회관 - 송덕암 교차로 - 민가앞 다리 - 산수저수지 오솔길-해미교회 - 진남문 - 성벽 - 동문- 옥사-서문 - 진남문 - 해미교- 해미숭교성지..약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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