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바래길..그중 구운몽길을 걷는다..

노도가 보이는 벽련마을에 도착..

 

 

 

 

 

왜 구운몽길인가?

숙종때 구운몽 소설을 쓴 서포 김만중이 앞에 보이는 섬 노도에서 귀양살다가 죽엇다.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 극에 달했던 숙종 시대를 숙명적으로 서인으로 살았던 사람..

유배지를 전전할 때마다 소설을 쓰면서 자신을 달랬더랬다..

일장춘몽같은 인생살이를 9사람의 꿈같은 이야기로 구비 구비 풀어낸 구운몽도 그런 통증 속에서 탄생했다..

물론 구운몽을 이 섬에서 쓴 것은 아니고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썼다는 설이 있다..

구운몽은 그의 어머니 윤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썼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병자호란당시 강화도가 함락될 때 서포 김만중을 임신하고 잇었다..그리고 어린 아들도 있었다..

당시 남편은 강화성 문루에서 일행과 자폭한 상황..

당시 사대부 유부녀는 자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녀는 필사의 탈출을 선택한다..

그리고 힘든 살림사리하면서 두아들을 공부시켜 두아들 모두 과거에 급제한다..

 

"어머니는 남편을 따라 죽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검은 옷, 흰 옷만 입었다. 아름다운 것이 있어도 몸에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잔치에 참석하거나 음악을 듣는 일도 없었다. 자식들에겐 공부 안하고 사느니 빨리 죽는 편이 낫다며 학문을 독려했고 가세가 기울어 빈궁한 가운데서도 곡식이며 베며 집안에 마지막 남은 것까지 내다 팔아 책을 사 주었다."

 

큰 아들은 숙종의 장인이 되었고, 유복자 서포는 구운몽의 작가가 되었다는..

서포가 노도에 귀양살 때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

 今朝欲寫思親語(금조욕사사친어)

字未成時淚己滋(자미성시루기자)

 오늘 아침 사친의 시 쓰려하는데

글씨도 이루기 전에 눈물 먼저 가리우네

 

 

서포 김만중의 할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다..

그래서 그의 당적은 당연 서인이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강화도 문루에서 청군이 진압하자 대신 김상용과 함께 자폭하였는데..

그 당시 나이 20대초반이었다.. 그의 정려비는 대전 유성구 전민동에 그의 묘소 앞에 있다..아들 서포 김만중의 소설비도 그 입구에 잇다..

김상용은 척화파 김상헌의 형으로 서인의 중추였고, 아버지가 그와 함께 자폭하였으니 그는 서인 핵심 패밀리로 자랄 수 밖에..

서포 김만중은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을 써서 숙종의 인현왕후 폐위사건를 비판하게 된다..

 

 

벽련마을에서 노도를 바라보며 봄날을 만끽하며 걷는다..

역시 따뚯한 남쪽 나라는 다르다..

 

 

 

 

돌아보면 남해 금산이 눈에 가득하다..

 

 

 

 

 

매화가 눈길을 잡는다..

매화는 추운 일생을 살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니

노도의 그 사람도 그렇게 살다 갔으리..

 

 

 

 

 

 

 

 

 

 

 

홍매도 피었다..

오늘 구운몽의 8선녀를 꼽으라면 백매, 홍매, 동백을 우선 꼽아야겠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는 공자와 맹자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 같은 임금을 섬겨,

나가면 백만 대군을 거느려 적진에 횡행하고, 들어서는 백관(百官)을 장악하는 재상이 되어

몸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는 황금으로 만든 도장을 차고,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달래며,

눈에는 아리따운 미색을 희롱하고, 귀에는 좋은 풍류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당대에 자랑하고 공명을 후세에 전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대장부의 일일 텐데 슬프다,

 

 

옛 사람이 자매형제가 혹 남의 아내도 되고 혹 남의 첩도 되었는데, 우리 이처육첩(二妻六妾)은 의가 골육 같고 정이 형제 같으니 어찌 천명(天命)이 아니겠는가.

타고난 성이 한 가지가 아니고 지위의 높고 낮음이 같지 않음은 족히 거리낄 일이 아니다. 마땅히 결의형제(結義兄弟)하여 일생을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

....

인간 세상의 모든 변화는 다 꿈 밖의 꿈이요, 한 마음으로 불법에 나아가니 극락 세계의 만만세 무궁한 즐거움이었다.

 

 

 

 

인적없던 이 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 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

 

 

꿈 같은 세월..덧 없는 인생이라지만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았다.. 

 

 

 

 

 

 

상주 은모래해변에 도착했다.

 

 

 

용왕님 나와바리에서 산신님 운운하는 시산제..

용쟁호투가 되지 않기만을..ㅎㅎ

 

 

 

 

멀리 금산 보리암과 오랜만에 눈인사를 나누며 걷기를 마친다..

 

 

 

봄날을 만끽하고 돌아오니 눈세상이 기다린다..

구운몽 시절의 사람이 보면, 축지법으로 천리를 왕래하는 신선들이라 하리라..ㅎ

 

 

 

 

 

<오늘 걷기> 벽련항 - 대량마을  - 상주 은모래 비치 약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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