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성장과 쇠망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다.

리쿠르고스의 개혁..

9000명의 시민에게 토지와 노예를 재분배한다..

그대신 9000명의 시민을 아고게라는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켜 전문 군사조직을 만들고,  공동식사를 통하여 단체의식을 키운 도시국가..

너무나 개성이 강렬해 그와 대비되는 아테네와 더불어 서양의 2대 원류로 꼽힌다..

 

그 정신이 생동할 때가 영화 300시절이다..

페르시아의 전쟁에 앞장서 폴리스들을 위기에서 구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그 당시 왕 레오니다스를 기리는 평..

 

내 백성들의 삶과 똑같이 나 또한 근면하고 분별력을 유지하며

성실한 삶을 이끌어 간다는 조건하에 왕권을 행사했다

나는 오로지

내 조국을 지키고 법규를 확실하게 지키고자 한 왕이었다.

나의 왕위는 악한 일을 행할 자격은 허용하지 않고

좋은 일만 할 권력만  주었다.

 

-페늘롱-

 

어디 왕뿐이랴 현대의 모든 지도자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그런 스파르타가 왜 망했을까?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돈을 유용하여 아테네 신전을 짓고 다른 폴리스의 조공을 받으며 제국으로 행세하는 꼴을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내전..타협으로 평화를 찾을 기회도 물거품이 되고..

모 아니면 도 식의 지리한 전쟁 끝에 스파르타가 승리한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하여 도리어 자신이 제국이 되어 폴리스들을 좌지우지하다가 테베에게 대패한다..

절정의 순간 급전직하..

자신이 욕하던 아테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문제는 스스로 개혁하지 못한채 근시안적, 폐쇄적인 국정운영으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즉,스파르타 초기 9000명의 시민이 군대의 주축이었는데, 테베에게 패배한 후인 BC 371년에는 시민이 1000명에 불과하였으나

군사력이 약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즉 부의 양극화가 심해져 공동식사에 비용을 댈수 있는 일정 토지를 가진 시민수가 100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주력 부대를 증대 시킬 수 없엇다..시민을 증대시키기 위한 개혁들이 실패로 돌아간뒤 스파르타는 추풍 낙엽의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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