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에 서울에 갔다..

태극기 시위나 촛불 시위 때문이 아니다..

도봉산 천축사를 걷는다..

 

 

좌판인지..개판인지..

맘에 안드는 손님한테는 사정없이 짖는다..ㅎ

 

 

 

 

멀리 자운봉, 선인봉이 보인다..

 

 

 

 

 

 

 

우암 송시열의 글씨란다..

그의 글씨가 왜 여기에??

 

 

 

오늘이 하나될 날인데..전국은 갈라져 시비한다..

오늘 만이라도 같이 태극기 들고 기념하는 것이 3.1정신이다..

 

 

엄친아의 소원..

고액 연봉으로 30에 결혼하게 해주세요..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감수영의 시에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민초들은 오늘도 힘든 일을 여기와서 털고 가니까?

 

 

도봉서원의 빈터가 잇다..

정암 조광조를 기리던 서원..도봉이라는 말도 거기서 나온 것...

그래서 우암 송시열도 이곳에 왔었고고, 글씨도 남겼다..

 

한가지 질문..도봉(道峰)이라는 글씨를 사액 받았다면 사액서원이고, 그렇다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시 사액 서원은 제외했을터인데

 왜 훼철되었을까?

대원군은 1사람에 대해 2개 이상 서원이 있는 경우 사액서원이라도 1개만 남기고 철폐시켰다..

그래서 전국 650개 서원중에서 47개만 보존시켰다..

우암 송시열의 경우 전국에 44개소의 서원이 있었는데 1개만 남겻으니, 대원군을 개혁가로 부를 수 잇는 것이다..

 

 

 

김수증? 누굴까?

 

병자호란 척화 3학사 중 1인인 김상헌의 손자이자 김수항의 형이다..

그들 형제는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서 우암과 같은 노론으로 정치적 부침을 같이한 사람이다.

그는 동생 김수항과  스승 우암이 유배가자, 강원도 화천에 은거하면서 조세걸로 하여금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한다.

조세걸은 평양출신 문인화가로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사람이다..

그는 성리학 개조 주자의 삶을 흠모하여 은둔 속에서 멋을 추구하여 주자의 무이구곡도를 모방하여 화천의 경치를 곡운구곡도에 담게하였다.

그림을 그릴 당시 조세걸과 계곡의 경치를 직접 보고 어떻게 그릴지 상의하여 그리게 했다.

우리나라 진경산수화의 단초를 여는 계기가 된다.

 

김수항의 아들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등 6형제는 백악산(북악산) 아래 살면서 후학들인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사천 이병연 등을 지도하고 백악사단을 형성하여 풍류를 즐기면서 진경시와 진경산수화를 개화시키고 이른바 영,정조의 진경문화시대를 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는 명나라를 계승한다는 "소중화주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하는 관점을 일깨웠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할 것이다.

 

 김창집은 숙종시 영의정을 지내면서 겸재 정선에게 도화서 벼슬자리를 마련해주어 안정적인 경제기반을 제공하고 후원했다.

그의 5대손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이 되면서 유명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시대를 열였다..

그들은 노론의 시대를 이끈 사람들이다..

 

 

 

 

 

 

 

1398년 태조 이성계가 이절에 천축사라 사액하였다..

그런 연고로 성종, 문정왕후, 명성황후 등이 이절에 시주하였으니 명실공히 왕실사찰 노릇을 했다..

그런데, 1398년은 태조의 병중에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해로 태조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는 해다..

따라서 그 때 천축사로 사액했다면, 아마 태조의 심정은 왕자의 난으로 죽은 방석, 방번 등 아들과 정도전 등 공신의 명목을 빌려는 마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인봉이 만불만큼이나 장엄하다..


 

 

이 세상에서 꿈꾸던 나의 인생은

세월가면 잊혀지는 그런게 아니야

하루를 살다가도 영원토록 기억되는 사람

영웅처럼 사는 거야..


실제로 그렇게 산 사람을 모신 곳이 대웅전이다..


 

 

 

선인봉 아래 천축사..

태조의 염원대로 비명에 죽은 아들과 공신들은 서방 천축국으로 갔을까?

그가 죽인 고려의 충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意和無違一心行(의화무위일심행)

뜻이 화합하여 서로 어긋남이 없으면 한 마음으로 행하게 되고,


見和同解無等觀(견화동해무등관)

견해가 화합하여 같이 풀어가면 차별 없이 세상을 보게된다.


 

身和同住用身一(신화동주용신일)

몸이 화합하여 함께 머물면 한 몸처럼 쓰게 되고,


口和無諍同口說(구화무쟁동구설)

입이 화합하여 다툼이 없으면 한 입처럼 말하게 된다.


진정 이 시대에 이 나라와 이 세계에 사자후로 외칠 일이다..

이런 정신으로 이끌겠다는 지도자에게 한표..


 

그러면 한 마음이 되어 한 꿈을 꾸고 기어코 선진국에 진입하여 반드시 통일을 이루고 4080의 강국이 되려니...

그때 중국이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하고 일본은 사과하고 미국은 존경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우러러 보리라..


 

 

아쉬움에 마당바위까지 오르기로 한다..


 


마당바위라고 착각한 곳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쉰다..

까마귀와 같이... 




생명은 위대하다..

반석같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굳은 생명력으로 바위를 가르다..


 

원래 본심은 마당바위에서 용어천계곡으로 하산할 생각이었는데..

지도를 잘못읽어 마당바위 직전에서 성도원으로 하산하게 되엇다는..ㅋ


 


하산길에 능원사..단청과 장식이 기존 불교와는 다른..

만장봉 아래 날개를 펴는 것은 금시조..

봉황이 아니란다..

용을 잡아먹는  신조라나..

그런데 미륵부처님은 용화세계라 하는데..금시조면 자충수 같기도 하고..ㅎ


하긴..요즘 잠룡인지 잡룡인지..깜도 안되는 자들이 설치는 세상에 잡룡들 잡아 먹는 금시조가 꼭 필요하다..ㅎ


 

 

  

 

<오늘 걷기> 도봉산역 - 도봉탐방지원센터 - 광륜사 -도봉서원 - 천축사 - 마당바위 - 성도원 - 성불사 - 도봉사 - 능원사 - 도봉산역  약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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