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걷기에 나섰다..

속리산 둘레길을 만들어 일부 구간이 개통했단다..

길을 만든다.??.

안목을 가지고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대부분 남이 만드니 나도 만들어야겠다는 "유행따라 가는 식"의 길은 노땡큐다..

관료의 실적주의와 업자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지는 예산낭비에 불과하니까..

 

 

 

말티재 정상 부근 보은 600주년 기념비 부근에 주차했다..

 

오호? 태종이 보은이라고 지명을 하사했다..

속리산을 걷고 도움을 받았나 보다..

원래 정이품송이 세조와 관련된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조선에서 피를 많이 본 왕들에게 위로를 준 고장이로구나..

 

 

 

눈에 푸른 연꽃이 눈에 들어온다..

참 시원한 풍광이다..

 

 

이길은 속리산 둘레길 중에서도 말티재 정상에 순환임도길을 조성하고 잇는데..이름을 꼬부랑길이라고 지었다..

길에다 백팔번뇌를 모두 새겨 놓을 모양이다..

1번은 탐, 3번은 치인데, 중간에 2번이 보이지 않으니 동행이 묻는다..

2번이 무어냐고?

"진리도 알지 못하면서 번뇌의 이름을 알아 무엇하랴!"

 

 

 

108번뇌 이름돌에 이젠 목탁까지 달아 놨다..

일행이 말하기를, 불교국가 중에서 목탁은 우리나라만 사용한단다..

과연 그럴까?

목탁은 불교 설화 중 목어(木漁)에서 유래한다..

그 디자인만 다를 뿐 한, 중, 일 불교에서 모두 목탁을 사용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손잡이가 없이 포단(蒲團) 위에 얹어 놓고 치는 큰 것과 손잡이가 달려 들고치는 두 가지가 있고, 우리나라 절에서는 대개 손에 잡고 두드리는 작은 형태의 목탁이 흔하다.
곧 보통 길게 한 번을 치되 처음에는 소리를 크게 했다가 차츰 줄이면서 치면 공양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오라는 뜻이 되고, 두 번을 길게 치면 논밭을 갈거나 공동의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이라는 뜻이며, 세 번을 길게 치면 학습이나 입선(入禪)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염불할 때 박자용으로도 사용된다..

 

 

속리산 백두대간이 황소잔등처럼 튼튼하다..

 

 

 

 

 

 

 

아직 응달엔 겨울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성미급하게 공사중인 구간을 걷고, 주차장에 모여 삽겹살로 배부르게 점심을 먹는다..

걷기도가 먹기도로 바뀌어 가는지..ㅎ

 

 

오후엔 북암리에서 백석리까지 걷는다..

 

 

 

 

 

 

장구봉을 바라보며 속리천을 따라 걷는 길이 시원하다..

 

 

 

 

 

 

 

백현리에 효자정려각이 서있다..

 

 

숙종 때 사람 나중경은 양 부모의 병환에 세 손가락을 잘라 수혈을 했고, 범에 물린 말고기와 개에게 물린 여우의 고기가 영약이라 하여 이를 구하여 드리고, 설단(設檀)하여 기도 드렸으며 부모상에는 4년 동안 착실히 시묘를 하였다..이에 1854년(철종5)에 정려가 세워졌다..

그가 심은 잣나무다 크게 자라서 마을 이름을 백현(잣고개)라고 지었다..

 

나는 생각한다..

효자란 부모의 임종시 손가락을 자르고 허벅지 살을 떼어내는 고행을 하는 사람을 표창하는 제도가 아니다..

한겨울에 딸기를 구하거나 잉어을 잡거나 범에 물린 말고기를 구하고, 개에게 물린 여우를 구하는 묘기 대행진도 아니다..

그저 부자가 서로 다투지 아니하고 화목한 것이 효자다..

 

조선이 희귀한 효자, 충신을 표창하고 선정비가 전국에 가득 세워졋어도 결국에 망한 이유는 형식과 명분만 중시하였기에 결국에 위선이 가득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속리산 꼬부랑길에서 위선도 108번뇌 중에 6번째 번뇌더라..

 

 

 

 

 

 

 

 

 

백석리 차도변에서 걷기를 종료한다..

억지로 둘레길 만들지 마라..

남는 예산 아끼고 국민 세금 중한줄 알라..꼭 긴요한데 세금을 써라..

경기 어려운 시절엔 차라리 국민 세금을 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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