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올레길을 걷고 상모동 박정희 생가에 갔다..
한국 현대사는 그에 대한 추모이거나 비난이다..
중국 서예사가 왕희지에 대한 추종이거나 일탈이고,
서양 현대음악사가 베토벤에 대한 존경이거나 극복이듯..
또한 그에 대한 평가의 양면성은 바로 북한에 대한 관점의 양면성과도 직결된다..
그는 참 초라한 초가에서 살앗다..
이 분통만한 방에서 공부하고 자랐다..
그의 부친은 처가의 선산이라도 부쳐먹으려고 칠곡군 약목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
그의 아버지는 20대에 동학혁명에 가담한 적이 잇는데, 그 기억이 그의 집권후 동학혁명 유적지를 보호관리하는 정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동학혁명 기념비 등에 쓴 그의 글씨들은 지워지고 부정되고 있다..
그는 5남2녀의 막내로 태어낫다..
늦둥이였으니 엄마가 얼마나 이뻐했을까?
작고 야무지고 대추방망이 같았던 소년..반장도 하고 담력도 세고 연극도 한 적이 있다..
1932년 4월 사범사범학교 입학
1937년 졸업후 문경보통학교 선생 부임
1939년 만주군관학교 입학
1942년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
1944년 일본 관동군 635부대 배치
1945년 광복군에 편입
1946년 조선경비사관학교 3개월 수료후 국방경비대 소위 부임
1948년 여순반란사건 관련 남로당 소속으로 적발되어 2심에서 징역10년 선고받았으나 집행정지 후 예편,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
1950.6월 전쟁중 소령으로 복귀
참으로 복잡한 인생경로를 밟았다..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나는 6살이었다..
그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5.16의 기상나팔 ~~""하는 노래가 기억난다..
그리고 군인들의 행진이 잇었고, 군인들이 길거리에서 좌측통행위반 등 교통위반자를 단속하는 장면도..
또 기억난다..국민학교 3학년때..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 맹호부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청룡부대, "아느냐 그이름 무적의 사나이~~" 백마부대..
노래 소리 요란했던 월남전 파병...
이에 대한 평가도 상극이다..
어쨋거나, 일본이 우리의 6.25 기회에 경제부흥하였듯이, 우리의 월남파병도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가족사도 파란만장이지만, 육여사와의 결혼은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1964년 서독을 방문..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난다..눈물 속에서..
그들 덕에 서독 차관을 들여왔다..
국민학교 시절에 서독 광부들은 자가용타고 출근하였다가 자가용 몰고 퇴근한다는 말을 듣고, 그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근로자가 그 수준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10월 유신이 있었다..
그때 구호가 100억 수출, 1000불 소득, 마이카 시대의 개막이었다..
난 그때 앞 2개는 가능해도 마이카 시대는 내 생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햇다..
그런데, 지금 마이카 시대가 되었다..
유비무환..준비하면 우환이 없다..
그런 정신으로 대덕연구단지를 만들고, 국방연구소를 만들어 자주국방의 초석을 놓앗다..
천하수안, 망전필위
천하가 비록 편안해도 전쟁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
<2023. 7.28. 추가>
그는 치산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산림청을 내무부에 배속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통하여 치산 사업을 독려했다..
지금 이땅이 금수강산이 된 것은 그의 지도력에 힘입은 바가 컸다..
대학 졸업 하던 해 그가 죽었다..
총으로 일어나 총으로 죽었다..
졸업식에서 총장이 말했다..
여러분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시대에 졸업을한다고..
그후 그의 공약대로 나는 마이카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수출주도 경제성장, 고속도로 건설,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조국 근대화의 설계자요 시공자였다..
그가 정치를 후퇴시키는 바람에 운동권이 성장하게 되엇고, 그 연기법으로 이제는 그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그를 평가하려면 공과가 상반된다..그래도 공7 과3이라고 평가한다..
로마로 치면 카이사르 같은 사람이다.. 공화정을 붕괴시키고 원로원의원의 칼아래 죽었으나, 그의 정신은 제국으로 승계되었다.
조선으로 치면 태종 같은 사람이다..피를 묻히고 많은 정적을 척결하고 외척을 제거하고 왕조의 기틀을 세운 사람 말이다..
민족중흥관의 저 그림처럼..
도도하게 흘러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서 무이일어(無二一魚)..오직 한마리 고기를 노리는 왜가리같이 살았다..
민족중흥..
국민학교 6학년 시절..그가 공표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선착순으로 집에 보냇기에 무조건 외웠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그에게는 욕심이 잇었다...
자기 손으로 민족 중흥을 이루어보겠다는..
그의 욕심은 마치 절대반지를 낀 것 처럼 결국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였다..
만일 그가 10월 유신을 하지 않고 김종필 등에게 후계를 물려주고 민주공화당을 통해서 근대화 작업을 민주적 절차로 진행하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최근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하엿는가?"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기능공 39명의 40년간의 임금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5년 현재 1억원 수준의 중산층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결론은 이렇다..
'박정희는 중공업을 일으켜 잉여인구가 될 가능성이 큰 도시 중하층 젊은이를 기능공이 되게하였고, 이들은 숙련노동자 중산층으로 성장하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0169.html
'방방곡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원예예술촌 (0) | 2018.03.29 |
---|---|
창원 해양드라마세트장 (0) | 2018.03.01 |
서울 전쟁기념관 - 다빈치 얼라이브 전.. (0) | 2017.12.24 |
대전 탄동천 단풍 (0) | 2017.11.10 |
무주 적상산 안국사 단풍 (0) | 2017.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