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중리해변 솔밭팬션에서 저녁을 먹었다.

전복회와 생선회로 푸짐한 저녁..

부산에서 합류한 분의 건배사가 분위기를 돋군다..

구호가 "예 형님"이다..

실제로 20여명이 떼창하니 무슨 칠성파 집회인 줄 알고 보길도 지서에서 출동할 것 같다..ㅎ

부산 쪽에서는 "술 한잔 마시자"를 " 술 좀 묻히자"고 한다나??

팬션 방에서 허리가 뜨거워 뒤척이다 깨어 6시에 새벽 산책에 나선다..




중리해변 끝에 도치미 등산로가 잇다..





진달래가 아침부터 곱게 화장하고 분홍치마입고 반긴다..




왼쪽은 미명의 붉음이 가득하고, 오른쪽은 새벽달이 서성이고 있다.








솔밭팬션이 있는 중리해변은 아직 새벽 단꿈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



그때 동녁으로 해가 오른다..

언제나 떠오르는 광명은 신비롭다..

장구한 시간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태양이야 말로 신격의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






동행이 섬끝을 가리키며 송시열의 글씐바위가 있다고 알려준다..

우암 송시열이 정적의 낙원인 보길도에 와서 글을 썼다고??


고산 윤선도는 남인의 맹장, 우암 송시열은 서인의 영수..

이들 두 사람은 효종과 현종 부자의 스승이었다..

현종 때 예송논쟁으로 두사람은 격렬히 다투었다.

두 사람다 성격이 곧고 직설적이라 적이 많았고, 둘다 치열하게 다투었다..

둘다 장수하여 고산 윤선도는 85세, 우암 송시열은 83까지 살았다.

고산 유선도는 평생 4번에 걸쳐 25년간 유배생활을 했으나 말년에는 그의 이상향인 이 곳 보길도 낙서재에서 편안히 눈을 감앗다.. 


한편 우암 송시열은 그의 인생 종반 숙종의 왕세자 책봉에 반대하다가 추풍낙엽 신세가 된다..

제주도에 귀양가는 도중 날씨가 불순하여 보길도에 일시 체류하던 중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지은 시를 이곳 암벽에 새겨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글씐바위라고 부른다..




八十三歲翁    팔십삼세옹

滄波萬里中    창파만리중

一言胡大罪    일언호대죄

三黜亦云窮    삼출역운궁

北構空瞻日    북구골첨일

南溟但信風    남명단신풍

貂구舊恩在    초구구은재

感激泣孤衷    감격읍고충

 

팔십 삼세 늙은 몸이

푸른 바다 만리 한가운데 있으니

말 한마디가 어찌 이리 큰죄를 얻어

세 번 쫓겨나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 하늘의 해를  우러러보던 이몸이

남쪽 바다에서 단지 바람만 믿는 신세가 되었네

단비 가죽옷의 옛 성은이 여기에 있어

감격에 겨워 외로이 눈물짓누나


그는 제주에서 귀양살이 하던중 다시 국문받기 위해 호송되어 정읍에 이르렀을 때 사약을 받고 죽는다..




도치미 끝에는 그렇게 인생무상의 이야기가 보인다..

그러니 허겁지겁 살지 말라

인생을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가는 길에 진달래가 오늘은 자기 친구들에게 통지하여 대대적으로 환영연을 열겠다고 속삭인다..

목련도 힘을 보태겟단다..





<오늘 걷기> 중리해변 - 도치미 산책, 왕복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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