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봉화산 둘레길을 걷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들린 육회비빔밥 식당 옆이 논개 생가였다..
논개..
고교시절 처연하게 외우던 시가 생각난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
학창시절에는 진주 기생으로 배웠다..
지금은 최경회의 부실로 표현되었으나, 설명문을 읽어보니 결국 작은 부인(소실, 첩)이었다는 것이다..
`
진주성 싸움..
임진왜란 초반 1차 싸움에서 김시민 목사의 결사 항전과 곽재우 등 의병의 유격활동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호남을 방어했다..
그후 평양성 탈환과 행주대첩으로 후퇴한 왜군들이 복수를 위한 리턴매치를 걸었다..
아군의 의견은 갈렸다..
곽재우 등 영남 의병은 참전을 거부했다..
호남의병이 주축이 되어 2차전을 벌였다..
그때 최경회와 논개가 참전했다..
고립무원의 외로운 성..
그리고 왜적의 물량공세에 성은 함락되고, 남편은 자결한다..
그녀는 기생처럼 차리고 왜군 승전잔치에 참석하여 왜장 한놈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다..
작지만 최대한의 복수..
이 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복원해 놓은 초옥을 보니 구미 박정희 생가 보다 크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고 홀어머니와 살다가 숙부가 어린 논개를 민며느리로 시집보내려고 하자, 어머니가 데리고 친정으로 도주한다..
그 사건으로 현감 최경회에게 재판을 받고 무죄 방면이 되었는데, 경제 형편상 어머니는 관비 노릇하며 최경회를 추종한다..
그 바람에 논개도 최경회를 따라다니다가 과년한 나이가 되자, 늙은 최경회의 작은 부인이 된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최경회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와 그가 충성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받쳤으리니..
방안을 들여다보니 장수사람 매천 황현이 지은 "의랑논개비" 시가 걸려있다..
楓川渡口水猶香
濯我須眉拜義娘
蕙質何由能殺賊
藁砧已自使編行
長溪父老誇鄕産
矗石丹靑祭國殤
追想穆陵人物盛
千秋妓籍一輝光
풍천 나루 흐르는 물은 지금도 향기로워
깨끗이 세수하고 의랑에게 절하리라
혜초같은 연약한 몸으로 어찌 적장을 죽였는가
낭군이 이미 항오에 들게 했기 때문이네
장계(長溪:장수)의 노인들이 제 고향 출신이라 자랑하고
촉석루의 단청에서 순국한 아가씨에게 제사 지내네
선조 때 인물의 성대함을 회상하니
천추의 기생호적을 빛낸 한 사람이 있구나
이 생가의 걸작은 장독대다..
나라가 부국 강병정책을 취하여 공론을 받들었다면, 구차하게 논개, 유관순 등의 아픔이 왜 있었겠는가?
용열한 나라 정책과 무능한 남자들에게 자극이라도 주려고 나섰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양궁여전사나 LPGA 여자 프로들 신세를 못 벗어나고 잇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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