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걷기에 나섰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마지막 거처..

그는 왜 이 곳을 열반지로 삼았는가??



경부 - 당포 -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 동군위 IC로 나가서 도착한 곳...인각사..

인각..기린의 뿔...

절 부근 화산의 형상이 기린을 닮았고, 절터가 기린 뿔의 위치란다..

이 절의 기린 같은 존재가 일연이다..




신라시대 부터 뿌릴 두고 있는 이 절은 고려시대 그 위상은 구산 선문의 앞자리에 위치했다..

극락전 주련 시..


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재하방)

着得心頭切莫忘 (착득심두절막망)

念到念窮無念處 (염도염궁무념처)

六門常放紫金光 (육문상방자금광)


아미타불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마음 머리에 붙여(화두삼아) 간절하게 잊지마라.

생각이  다하고 다하여 무념처에 이르면

육문에서 항상 금빛 광채가 나리라..


일연..

그는 삼국사기와 쌍벽을 이루는 삼국유사를 써서 고조선의 단군과 신라의 향가를 우리에게 전해준 고마운 분이다.



국사전의 주련시..


청백가풍직사형  淸白家風直似衡   청백 가풍은 저울과 같으니

기수고하낙인정  豈隨高下落人情   어찌 높고 낮음을 따라 인정에 떨어지겠는가?

칭두불허창승좌  秤頭不許蒼蠅坐   저울엔 날파리가 앉는 것도 허락치 않으니

사자경시실정평  些子傾時失正平   조금만 기울어도 평정함을 잃는다네


0.001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자세로 수행해야 도를 깨닫는다는 말일테지..



일연국사의 부도탑은 원래 자리에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비각은 파편만 남았다...

원래는 서성이라고 불리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귀한 것이라, 중국의 사신도 탁본을 얻어 가곤 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비석을 자빠뜨려 탁본을 떠가면서 파괴되기 시작해서 현재는 이런 몰골이 되었다..



둘레길의 입구는 이 비각 뒤편에서 시작된다..



산길을 800미터 쯤 올라가야한다..



초반을 제법 잘 단장된 길이 전망대  정자까지 이어진다..




정자에 앉아 난자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ㅎ

잠시 쉬면서 군위호바라본다..

위천을 막아 만든 댐..

댐 아래는 일연공원이다..




위 마을이 우리가 지나갈 곳이다..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고 정상으로 향한다..

계단세례가 시작된다..



별 볼일을 없는 정상을 위해 이런 계단을 만들었을까 싶지만

이 계단이 없으면 길을 내기 어려웟겠지..

정상 지나서 시작되는 내리막을 보면 안다..



연결 고리로서의 내리막을 참고 가면 원 부도탑지에 도착한다..

원래 여기 있던 부도탑을 현재 자리로 옮겨놓고 여기는 복사품을 세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던 그 마을을 지나간다..

외양간 소들이 신기한듯 바라본다..




위천을 건너면 일연공원과 효행길 2코스(묘소길)가 이어진다..

위천 다리 밑에는 평상을 설치해놓고 대여하는 곳이 있어 사람들이 몰려든다..

위천 점용허가는 받고 사업을 하시는지?? ㅎ






일연 국사의 모친 묘소 가는 길 입구에는 "효"자가 크게 써있다..

그는 국사로 책봉된 78세에 95세의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온다..

봉양기간은 1년 남짓 모친은 9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연공원이라는 한자 중 앞 3자는 왕희지의 글씨로, 마지막 원 자는 왕희지 글씨를 구하지 못해 송나라 명필 황진경의 글씨로 집자해서 만들었단다..





올갱이 잡는 모녀의 뒷모습이 정겹다..



5월의 열정 장미터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작동않는 인공폭포와 에스로드..




그네 다리로 건너보고..

더위를 피하려고 정자로 갔으나 지저분하던지, 지붕이 플라스틱이라 열 차단이 안되어 그냥 지나오려니 6월의 더위가 어깨를 누른다..

위천 다리 밑 유료 평상이 유혹한다..




이제 위천의 둑방길을 따라가면 인각사가 나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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