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이 되면 문득 가보게 되는 곳..계룡산 서남쪽 신원사..
초입에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었다..
그러나 사천왕문 앞에는 단풍이 올 생각이 없다..
언젠가 왔을 때 풍경과 너무 다르다..
그러나 난국에 영웅이 나오는 법..
오늘의 득템은 매석당의 곶감이네..
매석당??
매화와 돌의 집..
우남 이승만..초대 대통령의 글씨다..
천왕봉 아래 자리잡은 중악단..
태조 3년 무학대사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의 명으로 건립된 산신각이었다..
‘중악(中嶽)’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철종 이전에 묘향산을 북악, 지리산을 남악이라 하고 계룡산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고종 16년 민비의 명으로 중악단을 중수하였다..
중악단에서 모시는 산신은 누구일까?
단군왕검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삼국유사에 단군왕검이 처음에 아사달 또는 평양에 도읍을 하고 나중에 백악산 아사달로 옮긴다.
기자 조선이 성립하자 그는 장당경으로 다시 옮긴다. 나중에 아사달로 숨어들어 산신이된다(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중악단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썼다..
그는 1885년, 1887년 토문감계사가 되어 청나라와 두만강 경계 협상을 한 인물이다..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는 1890년 이조참의가 되어 충청도 암행어사의 임무를 수행했다..
1891년 이 현판을 썼다..
현판에 직지어사란 암행어사의 별칭이다..
그는 1910년 규장각 제학으로 한일합방에 극렬히 반대했다..
萬里白雲靑嶂裡(만리백운청장리)
雲車鶴駕任閒情(운거학가임한정)
만리 흰 구름 속 청산 깊이 자리하며,
구름 수레, 학 가마 몰고 인연따라 정나누네.
중악단 산신령이 흑발이라 이곳 단풍도 늦게 오나?
숲길이 안티에이징, 청춘이다.
한줄기 단풍이 화를 달래주네..
아픈 무릎 끌고 고왕암까지 이 짧은 거리를 멀게도 왔다..
잠못드는 자에게 밤이 길듯이
다리 아픈 자에게는 갈 길이 멀도다..
한 그릇 밥 소화시키고
십리를 걸어갈 수 있는 다리 힘이
진정한 행복이로다..
아프니 알겟다..
아픈 중생의 고통을..
그래서 보살은 늘 아프다..
그래도 염치가 잇는지, 단풍 한줄기 마애불께 공양 올리고 있다..
오늘은 애용 카메라를 놓고 오는 바람에 급히 핸폰으로 풍광을 찍었다..
뽀샵이 안되니 진면목이 나타나는구나..
그동안 단풍 사진이 얼마나 허풍이 심한 것인지를..
중장리 은행나무 숲길은 다음주나 되어야 절정이 되려는지..
늦깍이 은행으로 등극하겠구나..
'걷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천 걷기 - 향수호수길 (0) | 2019.11.30 |
---|---|
옥천 걷기 - 오대리 건너가기 (0) | 2019.11.10 |
천안 걷기 - 어사 박문수 테마 둘레길 (0) | 2019.11.09 |
천안 걷기 - 홍대용 과학관 (0) | 2019.11.09 |
천안 걷기 - 독립기념관 단풍나무 숲길 (0) | 2019.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