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의 여주 걷기

전 주에 "수집가의 철학"의 저자의 특강을 듣고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그는 여주 폰 박물관 관장이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스마트폰의 강국이 된 것은 기술력 뿐 아니라 한글이 한몫을 했다고 본다..

한글로 스마트폰 입력이  편리하기 때문에 저변이 손쉽게 확대된 것이다...

한글의 창시자가 여주에 잠들어 있다..

세종대왕의 영릉(英陵)..

물론 그 옆에 같은 이름의 효종의 영릉(寧陵)도 있다...

결국 여주걷기는 한글테마 걷기가 된 셈이다..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임금..

내치로는 인재육성(집현전), 과학기술 육성, 음악진흥, 한글창제

외치로는 북로 남왜 정책으로 대마도 정벌, 6진개척을 들 수 있다..

그야말로 부국강병정책으로 나라을 안정시킨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그리고 한국인의 자존심이 된 한글 창제다...

그가 만원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그 한글로 인해 우리가 스마트폰 시대를 주도한다는 거..

나비효과라고 할까??












음악을 정비하면서 편종..

편종은 중국 은나라 때부터 왕의 행사에 사용되었던 악기인데,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수입되었다..







편경..



백아(흰기러기)는 편경이 흰 기러기 울음 소라처럼 청아함을 상징한다..



편경과 편종은 음악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나?

편종이 한 옥타브 더 높은 소리를 낸다.

종묘제례악에서 같이 연주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종의 영릉은 공사하는 중이라  사진방문으로 대신한다..




효종의 북벌 정책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정책에 누가 동조했을까?

우암 송시열이 동조했다고?

그는 관념적 북벌론자였다..

효종 사후 그는 제갈량 처럼 북벌을 주장하지 않았다..



효종 시대의 조총부대를 보며 생각한다..

임진왜란 후 정예 조총부대를 양성했더라면 후금의 기마병을 조총으로 격파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조선이 고려 시대 거란을 물리친 것처럼 천하는 3분 되었을 터인데..ㅎ

하지만, 조선의 조총부대에 대한 관념은 전혀 발전이 없었다..

구슬이 서말이면 뭐하나, 꿸 줄아는 사람이 없는데..ㅎ

병자호란 쌍령전투 때 조선의 조총병은 미숙한 대처로 청나라 800기병에 박살나고 몇만의 영남 근왕병이 붕괴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고립무원이 된 남한산성도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는..

그 때 조선에 오다 노부나가처럼 조총부대를 3단 연속사격의 개념으로 훈련 시켜 청나라 기병과 대적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인데..

그럴만한 왕이나 장군이 잇어야 하는 것인데, 인조 정권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는..

인조야 말로 아버지 선조처럼 아주 위선적인 리더였다는..

지금의 문통도 거의 같은 수준 아닐까??







세종대와의 영릉은 공사중이라 멀리서 알현만 하고 효종의 영릉으로 간다..






왕의 숲길은 5월 -10월만 개방한대서 멀리서 눈팅만 하고 간다..



효종의 영릉







영릉의 숲길을 걸으며 조선의 흥망성쇠를 생각한다..

문약에 빠져 입으로 싸우던 사람들..

그 유전자가 내려와 지금도 입과 댓글로 싸움을 지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