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비 중 민비가 많다.
태종비 원경왕후, 숙종비 인현왕후, 고종비 명성황후..
세사람 다 파란만장의 인생을 살았고, 각자 대하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그중 명성왕후 민비를 본다.
그동안 토막역사를 보다가 연결이 안되던 부분이 이 책으로 해소되엇다.
그녀는 민치록의 무남 독녀 외동딸이었다.
아버지는 10촌되는 민승호를 양자로 맞았다.
아버지 사후 그녀는 고종비로 간택되었다.
대원권 섭정 10년차 1873년고종을 부추겨 시아버지를 실각시키고 고종의 친정체제를 구축한다.
그녀는 친정세력을 요직에 임명해 권력의 핵심에 선다..
그러나 그녀의 오빠 민승호는 1874년 폭탄으로 암살당한다. 그자리에 있던 친정어머니와 민승호의 아들도 부상으로 죽는다..
그런데, 그녀는 민승호의 양자로 민승호의 동생(민겸호)의 아들 민영환 등으로 삼지않고, 먼 친족인 민영익으로 삼고 중용한다..
민영익은 김옥균, 홍영식 등 개화파들과 어울리며 개국정책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개국이후 개방정책 당시 민씨 일족은 권세를 이용해 부를 누리면서 원성이 높았다.
그러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면서 분쟁의 원인제공자 선혜청 당상 민규호는 궁궐에서 살해된다.
그녀는 궁을 빠져나가 중주에 숨었다가 청국의 도움으로 복귀한다.
한편 민영익은 1883년부터 미국, 유럽을 돌아보고 왓음에도 오히려 보수파로 변신한다.
이는 임오군란으로 청국 개입하여 민씨정권이 유지되자, 보수적인 친청정책으로 돌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민영익의 변신에 김옥균, 홍영식 등 개화파는 조급증을 느끼고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민영익은 중상을 입고 살아낫으나 그뒤 부침을 거쳐 상해로 망명한뒤 1905년 상해에서 사망한다..
그녀는 이후 능란한 외교술로 국권을 지켜보려 하였으나 결국 1895년 일본의 낭인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녀 사후 10년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민영환이 자결한다..
임오군란의 원인제공자 민겸호의 아들인 그가 자결함으로써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되었다..
***
운명이 있다고 믿는가?
태종의 민비는 남편이 왕이 된후 친정집을 도륙낸다는 사실을 예견햇다면 과연 남편이 왕이 되는데 진력을 다해 도왔을까?
고종의 민비는 자신이 정치에 개입하면 친정식구들이 폭사, 참살되고, 자신도 살해된다는 사실을 예견했더라도 정치에 개입하였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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