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효종의 북벌 추구 시절..어영대장 이완이 허생을 찾아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을 계책을 묻는다.

허생이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준다.

"국중의 자제를 가려 뽑아 변발(청나라식 헤어스타일)을 시키고 호복(청나라 옷)을 입혀 청나라에 첩자를 보내되, 양반자제는 청나라에 벼슬을 하면서, 상민의 자제는 강남에 장사을 하면서, 저들의 실정을 정탐하고 그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국치를 씻을 수 있을 것이요"

 

그러자, 이완대장이 기겁한다.

"양반들이 예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하고 호복을 입겠습니까?"

 

이제 허생이 호통을 친다.

"나라의 치욕을 갚겠다는 자들이 머리털도 못건들고, 옷도 고쳐입을 수 없다면서, 예법만 따지니 어찌 가능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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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직후인데도 그랬다.

송시열은 정신적으로 명나라의 정신을 상속햇으니 우리가 소중화이고, 정신적으로 이기면 된다는 식이었다.

아Q정전에 나오는 아Q의 아전인수 비슷하다.

 

그런데, 조선말기 서세동점의 시대에 조선에서 자발적 개화가 가능했을까?

가정이지만, 아예 홍경래의 난이 철종 시절에 터졌으면 가능했을까?

대원군의 철지난 개혁으로 착시에 빠져 청나라의 몰락 소식도 듣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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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엽에 허생의 조언을 그대로 따른 나라가 있었다.

일본..

막부와 죠슈, 샤스마 번등이 존왕양이, 대정봉환 등의 이슈로 대립하고 잇을 때, 일단의 사무라이 5명이 존왕양이(왕을 보위하고 오랑캐를 침)를 위해서 서양 오랑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

그들은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고 영국배를 타고 건너가, 산업혁명을 완수한 영국의 현실을 보고 양이정책을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들은 영국대학에 유학하여 각 분야를 배웠다.

이들이 메이지 유신과 그 이후 일본의 각 분야의 개국과 개혁을 주도했다.

 

메이지 유신의 중추세력인 죠슈와 사스마 번은 역사적으로도 백제 부흥을 위한 백촌강 전투, 여원연합군의 일본 침공, 임진왜란 침략 등으로 반한정서가 깔려있는 지역인데다가, 죠슈번의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 등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 메이지 정권의 핵심에 있었기에 일본은 지속적으로 정한론을 구체화 하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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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당시 우리가 세계 정세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아는 자들은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사이 조선은 일본의 정한론에 먹혀버렸다.

지금도 아베 등 일본 주요 정치세력은 죠수번 출신이 잡고 잇다.

또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반목하고 싸우느라 정신을 놓고 있다.

그 사이 반일을 이용하여 치부하거나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만 득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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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허생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까?

"일본 헤어스타일하고 일본 패션을 입고 일본 문화를 연구해봐라.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기지?"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본의 역사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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